축구 잡담

나의 축구선수 평가는 상식적이지 않다.

Griezee7 2025. 10. 8.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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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를 비롯한 팀 스포츠에서 선수 개인을 평가할 때는 크게 3가지 요소가 있다. 바로 어빌리티(순수 능력), 퍼포먼스(실제 경기력), 커리어(성과)이다. 일반적으로 평가의 주체마다 저 요소들 간의 비중 분배가 달라지지만, 저 3가지 요소를 모두 고려한다는 것은 공통적이다. 그리고 종목에 따라 3가지 요소들을 조합한 평가 기준이 조금씩, 어쩌면 많이 달라진다. 필자의 경우, 종목에 따른 평가 기준의 차이는 그 종목의 문화라고 생각하고 존중하는 편이다. 그 종목의 일반적인 평가 기준을 최대한 존중하는 선에서 자신의 주관을 첨가한다.
 
그러나 필자가 가장 오래, 가장 깊게 봐온 축구의 경우에는 아예 기존의 상식적인 평가 기준이 틀렸다는 결론을 내리고 독자적인 기준을 정립하였다. 필자는 3가지 요소를 모두 고려하지만 동일한 비중을 주고 각 요소를 평가한 다음 점수를 합산하는 방식으로는 접근하지 않는다. 선수의 역사적인 위치, 즉 위상을 평가할 때는 마치 피라미드 모양처럼, 가장 근본적인 요소로 어빌리티를 두고, 그 다음 퍼포먼스를 고려하여 대략적인 티어를 나눈 다음에 비슷한 급의 선수끼리의 비교에서 커리어를 바탕으로 우열을 가르는 편이다. 
 
여기서 어빌리티와 퍼포먼스는 당연히 선수의 전성기, 프라임 때를 기준으로 한다. 선수의 누적치는 최종 단계인 커리어 평가에 충분히 반영된다고 생각하고 롱런에 대한 부분은 선수 평가의 근본적인 부분이 아니라 추가적인 가산점 형태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왜 선수의 프라임이 중요한가? 선수의 커리어는 자신이 가진 재능을 노력을 통해 꽃피우는 과정이다. 그 결과물을 오래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과물의 퀄리티에 높은 점수를 매길 수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 또한 팀 스포츠에서 모든 팀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우승이다. 동일한 기간으로 계약한 두 선수가 있을 때, 매 시즌 2위를 보장해줄 수 있는 선수보다 한 번의 우승과 나머지의 3위를 가져다주는 선수가 훨씬 가치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선수 개인을 평가하는 것이므로, 선수 개인의 역량이 아닌 불순한 요소들을 모두 걷어내고 순수한 개인의 역량만을 추출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겉으로 보이는 결과물에는 팀 동료의 수준이나 전술 등의 외부 환경이 개입해있는데, 이러한 변인들을 최대한으로 통제하여, 임의의 환경에서 선수가 보여줄 수 있는 결과물이 어떨지를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축구는 통계가 발달한 종목이 아니다. 꽤 오랜 기간 동안 축구에서 스탯이라는 것은 사실상 득점과 도움, 공격 포인트가 전부였으며 뒤늦게 세부 지표들이 발달했으나 한계가 명확하고 집계가 시작된 역사가 길지 않다. 그러나 타 종목에 비해 통계가 덜 발달하였다고 해도, 그것들을 이용하지 않을 것인가? 적어도 골과 어시스트로만 선수를 평가하는 것보다는 여러 세부 지표들을 해석하여 평가하는 것이 훨씬 정밀하고 가치있음은 자명하다. 
 
물론 역사적으로 세부 지표가 발달하지 않은 과거의 선수들과 오늘날의 선수들을 비교한다면, 당연히 후자의 선수들을 통계적으로 평가하기가 훨씬 쉽다. 아니, 전자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관련 지표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의 선수들은 여러 자료들을 통해 추측할 수 있는 영역으로 보는 수밖에 없다. 혹자는 이런 방식이 불공정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과거의 선수는 단순한 스탯과 플레이 스타일을 묘사한 자료들에 의존하여 평가하고, 현재의 선수는 온갖 세밀한 지표들과 영상 자료로 평가한다면 정보의 양과 질이 무척이나 다른데, 과연 공정한 비교가 가능할까? 
 
이에 대한 답은 하나밖에 없다. 순수한 개인의 역량만을 추출해내는 과정에는 최대한의 노력을 쏟아부어야 하며, 써먹을 수 있는건 모두 써먹어야 한다. 물론 과거로 갈수록 평가의 정확도가 떨어지긴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쩔 수가 없는 한계이다. 과거 선수를 부정확하게 평가한다고 해서 현대 선수도 부정확하게 평가하려고 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쓸 수 있는 도구가 있다면 활용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문명 사회의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마땅한 태도이다. 
 
그럼 구체적으로 나의 평가 기준이 비상식적인 부분은 뭐가 있을까? 바로 기존의 1차 스탯, 특히 공격 포인트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공격 포인트(이하 스탯)를 잘 쌓는 것이 팀의 공격에 더 많이 기여했다고 볼 수 있을까? 이 명제에 대한 답은 '전혀 아니다'이다. 물론 스탯을 잘 쌓은 선수가 팀 공격에도 많이 기여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저 명제는 일반화를 요구한다. 일반적으로, 즉 거의 모든 경우에서 공격수 개인의 많은 스탯이 팀의 많은 득점과 명확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장담할 수 있나? 그 어떤 상관관계도 없다. 
 
공격 포인트라는 스탯의 본질을 파악하자. 골이 무엇이고 어시스트는 무엇인가? 팀이 어떠한 공격 작업을 거쳐서 한 골의 득점을 만들어냈을 때, 마지막으로 공을 터치한 선수에게 적립되는 스탯이 골이고, 마지막에서 두 번째로 공을 터치한 선수에게 적립되는 스탯이 어시스트이다. 이게 전부다. 득점을 위한 공격 과정은 선수 혼자 하는게 아니다. 팀으로서 여러 선수들의 개인 기량의 합과 조직력, 전술이 조화되어 득점이라는 목적을 위한 과정을 수행하는 것이다. 당연히 한 골이 나왔을 때 그 1점이라는 점수에 대한 여러 선수의 기여도 분포는 상황에 따라 다 다르다. 그러나 축구계는 마지막으로 공을 터치한, 막말로 '막타충'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선수에게 그 1점의 가치를 몰아서 부여해준다. 어떤 선수가 마치 메시와 마라도나처럼 모든 수비수들을 다 제치고 골을 만들었어도 그 선수 뒤에 두 명의 발을 거쳤다면, 그 선수에게 주어지는 수치는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골 결정력이라는 능력치에 대한 상식의 문제점. 축구계는 선수의 골 결정력, 더 나아가 득점력이라는 모호한 능력치를 득점 수를 바탕으로 평가한다. 이것이 왜 문제냐고? 득점 '볼륨'만을 고려하니까 문제인 것이다. 팀에 따라 한 경기에서 가져가는 공격 포제션의 횟수도 매우 달라지고, 그 포제션을 통해 창출되는 기회의 퀄리티도 매우 달라진다. 압도적인 전력을 가지고 공격 지향적인 축구를 구사하는 강팀에서 수많은 포제션의 마무리를 대부분 홀로 도맡아 하는 공격수가 있다면 당연히 득점 볼륨은 높을 것이다. 아무리 많은 찬스를 날려먹어도, 포제션 대비 득점 전환률이 낮아도, 그냥 물량으로 때려박아서 득점 볼륨은 좋게 포장할 수 있다. 묻겠다. 이 선수가 좋은 결정력을 가졌다고 평가할 수 있는가? 반면에, 상대적으로 약한 전력을 가지고 수비 후 역습을 지향하는 축구를 구사하는 팀에서 한정된 포제션을 득점으로 이끌어야 하는 공격수가 있다. 적은 포제션과 찬스가 주어지지만 최대한 높은 득점 전환률을 보여주어도 득점 볼륨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선수가 결정력이 좋지 않은 선수인가? 
 
앞서 말했던 것처럼, 순수한 개인의 역량만을 추출해내기 위해서는, 변인들을 최대한으로 통제하여, 임의의 환경에서 선수가 보여줄 수 있는 결과물이 어떨지를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동일한 환경에서는 당연히 같은 횟수의 포제션과 기회가 주어진다. 그럼 이러한 상황에서는 당연히 포제션 대비 득점 전환률이 높은 선수가 높은 득점을 기록하지 않겠는가? 그래, 우리는 득점의 '볼륨'이 아닌 '효율'을 봐야 한다. 볼륨으로 세탁하는 선수가 아니라, 효율이 높은 선수가 더 뛰어난 골 결정력, 득점력을 지닌 것이다. 
 
득점 효율을 보기 위한 지표는 그나마 잘 발달되어 있다. 단순하게는 슈팅 수 대비 득점을 보면 되고, 더 세밀하게 보고자 한다면 기대 득점(xG) 대비 실제 득점을 보면 된다. 물론 두 가지를 적절하게 섞어서 해석해야 한다. 이러한 해석에 대한 예시는 다음 기회에 보여주도록 하겠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환경에 따라 정해지는 수치가 아니라, 최대한 개인의 역량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수치를 중요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과감하고 비상식적인 사람이다. 나에게 득점에 관해 중요한 수치는, 1차적으로 기록된 골 수가 아니다. 2차적으로 가공되어 해석할 수 있는 지표들만이 중요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적어도 축구에 있어서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다. 나에게 상식을 요구하며 나를 손가락질 하지 말라. 나는 나만의 주관을 이미 확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