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이 현재 플레이에서 다음 플레이로 이어나갈 수 있는 무궁한 가능성 중에서 최선의 선택지를 판단하여 실행시키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말하는 2선에서 전방으로 키패스를 찔러주어 득점 찬스를 생산해내는 찬스메이킹과는 다른 개념이죠. 하지만 그 찬스메이킹도 플레이메이킹 안에 포함되는 개념일 겁니다. 주위 선수들과 공 소유권을 주고받으며 상대의 수비를 뚫어내고자 하는 연계 플레이나, 홀로 드리블 돌파를 통해 수비진에 갑작스러운 균열을 만들어내고 변수를 창출해내는 크랙 플레이 역시 플레이메이킹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크랙, 연계에 능한 선수들을 뛰어난 플레이메이커라고 부를 수 있나요? 그건 아닙니다. 플레이메이킹은 앞서 말한 모든 것들, 즉 찬스메이킹, 연계, 크랙, 빌드업 전개 등과 특정하게 분류할 수 없는 나머지 모든 플레이들을 다 포괄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에 모두 능하거나 팀 단위로 지휘할 수 있는 선수들을 플레이메이커라고 지칭해야겠죠.
뭐 엄밀히 따지자면 크랙 윙어나 연계에 뛰어난 스트라이커, 후방 빌드업을 주도하는 볼 플레잉 센터백과 같은 선수들을 플레이메이커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팀의 플레이메이킹에 기여하니까요. 키패스가 최선의 플레이일 때 그것을 해내는 찬스메이커, 크랙 플레이가 최선의 플레이일 때 그것을 해내는 크랙. 이들 모두 적절한 상황에 자신의 역할을 해낸다면 팀의 플레이메이킹을 주도한 것이 됩니다.
그러나 제가 말했다시피 플레이메이킹은 최선의 선택지를 "판단"하여 "실행시키는" 행위이고 플레이메이커는 "팀 단위"로 "지휘"할 수 있는 선수여야 합니다. 즉 팀이 실행하는 모든 플레이(주로 공격 상황에 한정하여)를 판단, 실행, 지휘하는 "플레이메이킹 리더"가 플레이메이커의 정의에 가장 부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플레이메이커라는 용어보다는 플레이메이킹 리더라는 용어가 더 적합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보편적으로 널리 쓰이는 플레이메이커라는 용어에 그 의미를 투영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보통 고전적인 플레이메이커라 하면 No.10, 2선 중앙의 공격형 미드필더를 연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시대에는 그 포지션이나 롤을 맡은 선수가 플레이메이킹 리더 역할을 수행했기에 그들을 플레이메이커로 부른 것이죠. 오늘날에는 전술의 트렌드가 변화했지만, 마찬가지로 팀의 환경에 따라서 그 팀의 플레이메이킹 리더 역할을 수행하는 선수가 그 팀의 플레이메이커로 불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플레이메이커라 하면 팀의 플레이메이킹을 리딩하는 선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새 핫한 논쟁 주제가 있습니다. 바로 "레벤수 논쟁". 레반도프스키, 벤제마, 수아레스를 비교하는 것이죠. 이들에 대한 축구 팬들의 많은 의견들을 접하다 보면 틀린 주장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누구는 플메질이 되고 누구는 안 된다"는 것인데, 제가 생각하는 플레이메이커의 정의에 부합하는 선수는 없습니다. 저 선수들을 평가할 때는 플레이메이킹의 일부인 최전방과 1.5선 언저리에서의 동료 공격수들과의 연계 능력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데, 플레이메이킹이라는 개념을 정확히 정의하지 않은 채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는 식으로 선을 그어버리니 논쟁이 산으로 가는 겁니다.
그럼 최전방 공격수는 플레이메이커가 될 수 없다는 겁니까? 아니요.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팀의 환경에 따라서 그 팀의 플레이메이킹 리더 역할을 수행하는 선수라면 누구나 플레이메이커가 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투톱 시절의 그리즈만은 스트라이커 내지는 섀도우 스트라이커로 분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종적으로 넓은 활동 범위를 통해 팀의 전반적인 공격 작업을 통제했습니다. 공격형 미드필더나 3선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내린 이후의 그리즈만만이 플레이메이커가 아닙니다. 그는 최전방 시절에도 플레이메이커였던 선수였고 스트라이커와 플레이메이커를 동시에 소화한 대표적인 예시가 될 수 있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수비수도 플레이메이커가 될 수 있는데, 주로 과거의 리베로들이 이에 해당되겠지요. 베켄바우어, 파사레야 등 공격성이 매우 짙은 수비수들은 팀 공격의 중심까지 이르렀습니다.
결론을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플레이메이커는 팀의 플레이메이킹 리더라는 점입니다. 플레이를 리딩(Reading)하고 또 리딩(Leading)할 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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