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잡담

마누엘 노이어가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인 이유

Fio de Esperança 2024. 3. 13.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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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키퍼라는 포지션의 특성을 생각해보면 마누엘 노이어가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임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이유

일반적으로 선방이라는 행위를 중점으로 볼 때 골키퍼는 축구의 모든 포지션 중에서 가장 단순하고, 수동적이며, 경기에 미치는 영향력이 낮은 포지션이다. 왜냐? 플레이에 무수히 많은 가능성이 존재하는 필드 플레이어와 다르게, 골키퍼는 상대가 슛을 차면 그것을 막아낸다는 단순한 행위를 반복적으로 수행한다. 상대가 슛을 하지 않으면(정확히는 '못하면') 골키퍼의 역할은 없다. 따라서 경기에 미치는 영향력이 다른 포지션에 비해 현저히 낮다.

그렇기 때문에 동 포지션 선수끼리의 실력 격차가 다른 포지션에 비해 잘 드러나지 않기도 하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잘하는 골키퍼와 못하는 골키퍼의 차이는 쉽게 느껴질지라도 잘하는 골키퍼끼리의 선방 능력 차이는 쉽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통계가 발달했고 '단순한 행위를 반복적으로 수행'한다는 특성상 골키퍼의 선방 능력은 통계가 잘 말해준다. 그러나 그 선방 능력의 차이가 실제 경기 내지는 시즌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적다는 말이다.

예시를 들어보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방 능력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레프 야신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일까. 예를 들어 야신 대신에 스즈키 자이온을 기용해야한다면 실점이 엄청 증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야신에 비하면 확실히 열세지만 그래도 당대 최고 수준으로는 평가받는 오블락이나 쿠르투아가 야신과 동일한 조건에서 시즌을 치른다면, 과연 팀의 실점이 얼마나 차이날지 의문이다. 그들의 실력 격차가 팀의 성적을 유의미하게 바꿔놓을 정도인가?

그럼 자연스럽게 일정 수준 이상 골키퍼끼리의 선방 능력 차이는 팀에 큰 영향이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면 골키퍼가 팀에 제공해주는 차이는 뭘까? 당연히 선방 외의 영역, 즉 스위퍼 키퍼의 덕목으로 여겨지는 것들이다. 이 분야에서의 실력 차이는 팀에 큰 차이로 나타난다. 그 툴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팀이 행할 수 있는 플레이에 엄청난 이점이 생기지 않는가? 전술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일단 먹고 들어가는거다.

그렇다면 위대한 골키퍼들을 평가할 때, 얼마 차이나지도 않는 선방 능력에 집착하는 것보다는 경기 영향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당연히 옳다. 이런 관점에서 노이어 이외의 대안을 입에 올릴 수 있겠는가?

좀 더 확실히 하고 싶다면, 축구 역사의 모든 선수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드래프트를 한다고 생각해보자. 일반적으로 골키퍼는 필드 플레이어에 비해 우선 순위가 밀린다. 이를테면, 같은 차례에서 차비 에르난데스를 거르고 야신을 뽑는다면 그건 어리석은 짓이다. 왜냐? 앞서 말했듯이 월드클래스 골키퍼는 또 다른 월드클래스 골키퍼로 대체가 가능하다. 그러나 미드필더는 아니다. 경기 영향력이 굉장히 높은데다가 개인의 플레이스타일 자체에 희소성이라는 가치가 존재할뿐더러, 특히 차비 정도의 급이 되면 팀의 기본적인 기조를 정해버릴 수 있는 코어 중의 코어 자원이다. 그러나 차비 대신 노이어를 뽑는 것은 개인의 강력한 주관이라는 명목 하에 납득이 가능하다. 왜냐, 노이어 역시 존재 자체로 팀에게 전술적 이득을 가져다주고 아예 그걸 바탕으로 팀의 색깔을 결정할 수 있으니까.

골키퍼와 플레이메이커는 보통 절대 동등한 위치에 있을 수 없다. 그것이 근본적인 한계이다. 그러나 간혹 비슷한 위치에 올라서는 경우가 있고 그런 경우를 높이 평가해야하는 것은 자명하다. 그럼 누가 골키퍼계의 GOAT인지도 답이 나오지 않는가? 이제 나에겐 그것이 너무도 당연한 결론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