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TOP10~1입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선정입니다. 주관적이지만 중립은 최대한 지켰습니다.
Rank 10
Sergio Ramos
세르히오 라모스
국적: 스페인
생년월일: 1986.03.30.
활동 기간: 2004~
주요 소속팀: 세비야, 레알 마드리드
21세기 레알 마드리드를 대표하는 수비수이자 레알 마드리드와 스페인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로, 레알 마드리드에서 커리어의 대부분을 보내며 5번의 라 리가 우승과 2번의 코파 델 레이 우승, 4번의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4번의 FIFA 클럽 월드컵 우승, 3번의 UEFA 슈퍼컵 우승, 4번의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우승을 이뤄냈다. 라 데시마, 챔피언스리그 3연패로 대표되는 21세기 레알 마드리드의 황금기를 이끈 주역이며 커리어 내내 일정 수준 이상의 기량을 꾸준하게 유지하며 세계 최고급의 수비수로 평가받아온 21세기 최고의 수비수이다.
스페인 국가대표팀에서도 맹활약하며 UEFA 유로 2008, 2010 FIFA 월드컵, UEFA 유로 2012로 이어지는 메이저 대회 3연패에 크게 공헌했다. 그 과정에서 2010 FIFA 월드컵 올스타 팀과 드림 팀에 모두 선정되었으며 UEFA 유로 2012 토너먼트의 팀에 선정되었다. 또한 아르마다 군단의 유니폼을 입고 무려 180경기에 출전하며 최다 출장 기록을 보유 중이다.
라이트백과 센터백에서 모두 월드클래스의 활약을 보여줬으며, 거친 플레이와 이로 인한 퇴장과 징계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하였으나 기본적으로 뛰어난 운동 능력을 바탕으로 도전적인 수비를 즐기던 높은 수비력의 소유자였다. 상술한 운동 능력을 이용하여 넓은 영역을 거침없이 뛰어다니며 빈 공간을 커버하는 것에 특히 능했고, 세트피스에서 헤더로 많은 득점을 기록했다. 젊은 시절에는 개인기가 뛰어난 공격수와의 일대일 대결에 약하다는 지적도 있었으나, 경험이 쌓인 이후에는 더 노련해진 수비 기술과 지능적인 위치 선정으로 더욱 굳건해진 수비력을 자랑했고 플레이메이킹에도 가담하는 등 높은 경기 영향력으로 팀을 이끌었다.
이러한 활약으로 라 리가 최우수 수비수를 5번 수상하였고 FIFA FIFPro 월드11에 11번 선정되며 수비수 최다 기록을 보유중이며, UEFA 올해의 팀에도 9번 선정되며 수비수 최다 기록을 보유중이다. ESM 올해의 팀에도 4번 선정되었다. 또한 본인이 우승한 4번의 챔피언스리그에서 모두 베스트 팀에 선정되었음은 물론 그 중 2번은 최고의 수비수에도 선정되었다. 또한 발롱도르에도 5번 노미네이트되어 2017년에 최고 순위 6위를 기록했다.
Rank 9
Ronald Koeman
로날트 쿠만
국적: 네덜란드
생년월일: 1963.03.21.
활동 기간: 1980~1997
주요 소속팀: 흐로닝언, 아약스, PSV, 바르셀로나, 페예노르트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 넣는 수비수로, PSV에서 3번의 에레디비시 우승과 2번의 KNVB 컵 우승, 1번의 유로피언 컵 우승을 이뤄냈는데 그 3번의 에레디비시 우승이 3연패였으며 1987-88시즌에는 3개의 대회를 모두 우승하며 트레블을 달성했다. 이후 바르셀로나에서도 활약하며 4번의 라 리가 우승과 1번의 코파 델 레이 우승, 1번의 유로피언 컵 우승을 이뤄냈다.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에서도 맹활약하며 UEFA 유로 1988 우승을 이뤄냈고 토너먼트의 팀에 선정되었다.
단단한 수비력과 날카로운 공격력을 모두 겸비한 쿠만은 흔히 역사상 최고의 골 넣는 수비수로 여겨진다. 강력한 킥 파워와 정교한 컨트롤로 중장거리 슈팅에 능했으며 세트피스 키커를 전담하였다. 중거리 슛으로 필드골을 득점하기도 했고 프리킥과 페널티킥으로도 많은 득점을 한 데드볼 스페셜리스트였다. 이 킥력을 득점에만 활용한 것이 아니라 후방에서의 빌드업과 롱패스에도 적극 활용하여 드림 팀의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하기도 했다. 또한 공격력에 어느 정도 가려졌지만 기본적으로 수비력도 갖춘 선수였다. 넓은 시야와 영리한 위치 선정, 날카롭고 정확한 슬라이딩 태클 능력으로 인해 정상급의 스위퍼로 군림할 수 있었다.
이러한 활약으로 네덜란드 올해의 축구선수를 2연속으로 수상하였으며 커리어 통산 축구 역사상 최다 득점 수비수 기록을 보유 중이다. 1993-94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으며 1991-92시즌 유로피언 컵 결승전에서 연장전 결승 프리킥 골을 득점하며 바르셀로나에게 첫 우승의 영광을 안겨주었다. 발롱도르에도 여러 번 노미네이트되어 1992년에 최고 순위 8위를 기록했다.
Rank 8
Domingos da Guia
도밍구스 다 기아
국적: 브라질
생년월일: 1912.11.19.
활동 기간: 1929~1950
주요 소속팀: 방구, 바스쿠 다 가마, 나시오날, 보카 주니어스, 플라멩구, 코린치앙스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으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의 여러 클럽에서 맹활약하며 통산 4번의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우승과 1번의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1번의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을 이뤄냈다. 브라질 국가대표팀에서도 맹활약하며 1938 FIFA 월드컵 3위, 1945, 1946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을 이뤄냈다. 이 과정에서 1938 FIFA 월드컵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으며 1945 코파 아메리카 MVP를 수상하였다.
브라질 축구계의 지역적 분리가 강하게 남아있던 시절에 카리오카 대표팀을 이끌며 3번의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지 셀레소잉스 이스타두아이스(브라질 주별 대표팀 챔피언십) 우승을 이뤄냈고 브라질 전국 대표팀을 중심으로 브라질 축구계가 점차 통합되는 것에 크게 기여했다. 이를 바탕으로 브라질은 193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에 걸쳐 놀라운 성장을 이룩했고 세계 축구계의 일류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뛰어난 운동 능력과 화려한 테크닉으로 단단한 수비력과 폭발적인 공격력을 모두 겸비했으며, 특히 상대 공격수들을 농락하는 드리블로 오버래핑하여 팀 공격 전개를 이끄는 능력은 당시에 매우 파격적이었고 강렬한 충격을 선사했다. 이러한 예술적인 움직임은 "Domingada(도밍가다)"라고 불렸으며 다 기아는 나시오날에서 뛰던 시절에 "El Maestro Divino(신성한 거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러한 활약으로 당대 세계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로 인정받았으며 우루과이의 위대한 주장 옵둘리오 바렐라는 다 기아를 향해 브라질 최고의 선수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Rank 7
Matthias Sammer
마티아스 자머
국적: 독일(동독)
생년월일: 1967.09.05.
활동 기간: 1985~1998
주요 소속팀: 디나모 드레스덴, VfB 슈투트가르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짧게나마 카이저의 재림을 보여주었던 최후의 리베로로, 미드필더와 수비수를 오가며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었다. 동독의 디나모 드레스덴에서 2번의 동독 오버리가 우승과 1번의 FDGB 포칼 우승을 이뤄냈으며, 독일 통일 이후 VfB 슈투트가르트로 이적하여 1번의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냈다. 이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2번의 분데스리가 우승과 1번의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독일 국가대표팀에서도 UEFA 유로 1996 우승과 UEFA 유로 1992 준우승을 이뤄내며 디 만샤프트의 20세기 마지막 전성기를 이끌었다. 특히 UEFA 유로 1996에서는 토너먼트의 팀에 선정되었고 토너먼트 최우수 선수를 수상하였다.
커리어 초반에는 여러 포지션과 역할에 두루 능했던 다재다능한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능숙한 볼 컨트롤과 파괴력 있는 전진, 강력한 슈팅으로 플레이메이킹과 직접 타격에 모두 뛰어났다. 공격형 미드필더뿐만 아니라 중앙 미드필더, 레프트윙, 수비형 미드필더, 센터 포워드 등 다양한 포지션에서 활약했다. 그러나 도르트문트 이적 이후 오트마어 히츠펠트 감독의 지시로 리베로 역할을 맡으며 프란츠 베켄바우어에 비견되는 최고의 리베로로 한 층 더 성장하게 되었다.
그의 기술에 가려져 있었던 훌륭한 전술안과 정확한 판단력이 리베로 변신 이후로 제대로 만개하며, 넓은 공간을 지능적으로 커버함과 동시에 날카로운 태클로 상대 공격수와의 승부를 이기기도 하였다. 특히 수비라인 지휘 능력이 출중하여 쓰리백에서의 오프사이드 트랩이라는 고난이도 작전을 능숙하게 구사하기도 했다. 최후방에서 경기를 조립하고 빠르게 앞으로 전진하여 이전처럼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플레이했는데, 그 과정에서 폭발적인 드리블과 동료와의 신속한 패스 앤 무브로 폭풍과 같은 전진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활약으로 키커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의 팀에 2번 선정되었고 1993년에는 키커 선정 분데스리가 최고의 미드필더에, 1995년과 1996년에는 키커 선정 분데스리가 최고의 리베로에 선정되었다. 또한 1994-95시즌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으며 1995년과 1996년에 독일 올해의 축구선수를 수상하였다. 특히 1996년에는 발롱도르를 수상하며 커리어에 방점을 찍었다.
Rank 6
Franco Baresi
프랑코 바레지
국적: 이탈리아
생년월일: 1960.05.08.
활동 기간: 1977~1997
주요 소속팀: AC 밀란
축구 수비의 본좌 국가라고 할 수 있는 이탈리아에서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로 추앙받는 선수로, 리베로의 현대화를 완성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커리어의 전부를 AC 밀란에서 보낸 AC 밀란의 원 클럽 맨으로, AC 밀란에서 6번의 세리에 A 우승과 3번의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2번의 인터콘티넨탈 컵 우승을 이뤄냈다.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서도 맹활약하며 백업 멤버로 1982 FIFA 월드컵 우승을 이뤄냈고 주축 멤버로 1990 FIFA 월드컵 3위와 1994 FIFA 월드컵 준우승을 이뤄냈다. 특히 1990 FIFA 월드컵에서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다소 작은 체격에도 불구하고 완성도 높은 수비 기술과 전술안으로 지역 방어와 대인 방어라는 수비의 2가지 방법론에 모두 능숙했다. 기존의 조나 미스타가 쇠퇴하고 아리고 사키 식의 4-4-2 포메이션을 비롯한 포백이 다시 유행함에 따라 리베로 역시 포백라인의 한 자리로서 새롭게 최적화될 필요성이 생겨났는데 그것을 이끈 선구자가 바로 바레지이다. 다양한 수비 전술에 녹아들고 수비라인을 지휘하며 전방 라인의 압박 체계와 연동하는 능력은 역사상 최고로 불러도 부족함이 없다. 또한 후방 빌드업과 전진 공격 가담에도 능하여 역사상 가장 완성도 높은 리베로로 불리기도 한다.
이러한 활약으로 1989-90시즌 구에린 도로를 수상하였으며 이 시즌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을 차지하는 이색적인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또한 1989년에는 발롱도르 2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고 1999년에 AC 밀란 세기의 선수, 2000년에 AIC 선정 세리에 A 세기의 선수에 선정되었다. 그의 등번호 6번은 AC 밀란의 영구결번이다.
Rank 5
Bobby Moore
바비 무어
국적: 잉글랜드
생년월일: 1941.04.12.
활동 기간: 1958~1978, 1983
주요 소속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풀럼
축구 종가로 불리는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로, 우승에 도전할 전력이 아니었던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에서 커리어의 대부분을 보내며 1963-64시즌 FA 컵 우승과 1964-65시즌 유로피언 컵 위너스 컵 우승을 이뤄냈다.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도 맹활약하며 1966 FIFA 월드컵 우승을 이뤄냈고 UEFA 유로 1968 3위를 이뤄냈으며 두 대회에서 모두 월드컵 올스타 팀과 유로 토너먼트의 팀에 선정되었다. 클럽과 국가대표팀에서 모두 오랫동안 주장 완장을 찼다.
프랑코 바레지가 리베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장본인이라면 바비 무어는 리베로를 따로 두지 않았던 시스템에서 리베로와 같은 플레이를 선보였던 선수다. 철벽과도 같은 수비력과 수비라인 지휘 능력은 역사상 최고 수준인데, 자신의 힘으로 팀 전체의 수비를 크게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경지에 이르렀다. 또한 넓은 시야와 정교한 롱패스를 통한 후방에서의 빌드업은 그를 단순히 1960년대 최고의 수비수에 국한시키지 않고 더 큰 영향력을 지닌 선수로 평가하게 만든다. 때때로 직접 공을 몰고 전진하기도 했는데 이후 프란츠 베켄바우어가 본격적으로 창시한 게르만 리베로를 연상시키기 충분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1964년에 FWA 올해의 축구선수를 수상하였고 1968년, 1969년에 월드 사커 선정 월드 XI에 선정되었으며 1970년에는 발롱도르 2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또한 2007년에 PFA 세기의 선수에 선정되었다.
Rank 4
José Nasazzi
호세 나사치
국적: 우루과이
생년월일: 1901.03.24.
활동 기간: 1918~1937
주요 소속팀: 베야 비스타, 나시오날
우루과이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이자 고전적인 수비수 중 역대 최고로 꼽히는 선수로, 우루과이의 약체 베야 비스타에서 커리어의 대부분을 보냈고 이후 강호 나시오날로 이적하여 2번의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을 이뤄냈다. 베야 비스타 시절에도 당대 최고의 팀인 나시오날과 함께 유럽과 미국으로 투어를 다녔을 정도로 실력이 출중했으며 나시오날과의 인연이 깊었다.
우루과이 국가대표팀에서도 맹활약하며 1930 초대 FIFA 월드컵 우승과 4번의 코파 아메리카 우승, 2번의 하계 올림픽 축구 우승을 이뤄냈고 1920~30년대 로스 차루아스 군단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특히 1930 FIFA 월드컵 골든볼을 수상하였고 1923, 1935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최우수 선수에 선정되며 국가대표팀 메이저 대회 3MVP라는 경이로운 업적을 달성하였다.
20세기 초반 기준으로 큰 체격을 자랑했으며 힘과 기술, 지능을 겸비한 최강의 수비력을 갖추었다. 이러한 수비력은 X선조차 나사치의 수비를 뚫지 못할 것이라는 찬사를 받았고 강력한 리더십으로 클럽과 국가대표팀에서 모두 주장을 맡았으며 'El Gran Mariscal(위대한 총사령관)'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또한 1925년에 나시오날의 객원 선수로 유럽 투어에 참가했을 당시 상당히 많은 득점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상대적 약체를 상대로는 수준급의 오버래핑을 선보였거나 아예 공격수로 출전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의 전성기 시절 영향력을 체감할 수 있는 자료가 있다. 1932년, 우루과이의 나시오날은 리그에서 34실점을 기록하며 3위에 올랐고, 베야 비스타는 리그에서... 자세한 설명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길 바란다.
https://red-archive.tistory.com/7
Rank 3
Daniel Passarella
다니엘 파사레야
국적: 아르헨티나
생년월일: 1953.05.25.
활동 기간: 1971~1989
주요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피오렌티나,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이자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수비수로, 리버 플레이트에서 커리어의 대부분을 보내며 7번의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과 1976시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준우승을 이뤄냈다. 이탈리아 세리에 A의 피오렌티나와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에서도 맹활약하며 리그 최고의 수비수로 인정받았다.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에서도 맹활약하며 주장으로서 1978 FIFA 월드컵 우승을 이뤄냈고 1986 FIFA 월드컵에서도 우승을 경험했으나 갑작스러운 장염으로 인해 제대로 출전하지는 못했다. 1978 FIFA 월드컵에서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역사상 최고 수준의 수비력과 공격력을 동시에 겸비하였으며 작은 신장에도 불구하고 강한 힘과 높은 점프로 지상에서의 경합과 공중에서의 제공권 장악에 모두 능했다. 힘, 기술, 지능을 모두 갖춘 완벽한 수비수 파사레야는 빠른 발과 훌륭한 위치선정으로 넓은 공간을 커버해냈고 거친 몸싸움과 날카로운 태클로 상대 공격수를 완전히 무력화시켰으며 뛰어난 예측력을 활용하여 빠른 역습의 기점이 되는 전진 수비 역시 돋보였다. 또한 강력한 카리스마와 리더십으로 수비라인을 지휘하는 것에도 두각을 나타내어 팀에게 빈틈 없는 안정감을 선사했다.
공격에서는 강력한 킥과 헤더, 전술안이 주된 무기였는데, 넓은 시야와 롱패스로 다이렉트한 공격을 전개하거나 폭발적인 전진 드리블을 활용하여 경기를 빠르게 풀어나갔다. 또한 우수한 볼 컨트롤과 정확한 판단력을 활용하여 탁월한 플레이메이킹을 선보였고, 특히 무시무시한 왼발 중장거리 슈팅으로 오픈 플레이와 세트피스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득점을 기록했다. 1976시즌에는 무려 35경기 24골이라는 흉악한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어쩌면 진정한 의미로 역사상 가장 완벽한 리베로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활약으로 1976년 아르헨티나 올해의 축구선수를 수상했고 1982, 1983년에 월드 사커 선정 월드 XI에 선정되었으며 남아메리카 올해의 축구선수에서도 지속적으로 좋은 성적을 냈다. (1976년 7위, 1978년 4위, 1979년 8위 등) 또한 그를 상징하는 별명 중 하나가 'El Kaiser(황제)'인데, 그가 유럽의 황제와 더불어 남아메리카의 황제로 추앙받았음을 알 수 있다.
Rank 2
Elías Figueroa
엘리아스 피게로아
국적: 칠레
생년월일: 1946.10.25.
활동 기간: 1964~1982
주요 소속팀: 페냐롤, 인테르나시오나우, 팔레스티노
남아메리카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로, 칠레, 우루과이, 브라질을 모두 정복하며 최고의 수비수로 인정받았다. 특히 우루과이의 페냐롤에서 2번의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과 1번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준우승, 1번의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스 슈퍼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브라질의 인테르나시오나우에서 5번의 캄페오나투 가우슈 우승(5연패)과 2번의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 A 우승을 이뤄냈다. 말년에는 칠레의 팔레스티노에서 1번의 칠레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과 1번의 코파 칠레 우승을 이뤄냈다.
칠레 국가대표팀에서도 맹활약하며 1979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을 이뤄냈고 1974 FIFA 월드컵에서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상대적으로 약체인 칠레를 이끌고 이룬 성과이기에 더욱 값지다. 또한 3번의 월드컵에서 연속으로 주장 완장을 차기도 했다.
'La Muralla Roja(붉은 벽)'이라고 불릴 정도로 무결점의 수비력을 자랑했으며 치명적인 공격력까지 지닌 완벽한 리베로였다. 견고한 대인 수비와 넓은 수비 범위, 경이로운 예측 수비, 압도적인 제공권 장악, 뛰어난 수비라인 지휘 능력이 모두 역사상 최고 수준으로 손꼽히며 이와 더불어 깔끔한 페어 플레이로 이름을 날렸다. 또한 넓은 시야와 짧고 정교한 패스로 팀의 공격 전개를 전체적으로 끌어올리는 능력이 출중했으며, 측면으로 공을 보내고 상대의 수비가 측면에 집중된 틈을 활용하여 순식간에 전방으로 침투하여 공격수로 플레이하는 것에 능했다. "양복을 입은 백작처럼 우아하고 벵갈 호랑이처럼 위험하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활약으로 1974~1976년 동안 남아메리카 올해의 축구선수를 3연속으로 수상하였고 칠레, 우루과이, 브라질을 통틀어 리그 최우수 선수에 무려 8번이나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칠레 3번, 우루과이 3번, 브라질 2번) 특히 많은 축구 평론가들로부터 1975년 세계 최고의 선수 유력 후보로 평가받는다. 또한 1999년에 20세기 칠레 최고의 축구선수로 선정되었으며 2000년에는 우루과이 20세기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2001년에는 브라질 20세기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선정되었다.
Rank 1
Franz Beckenbauer
프란츠 베켄바우어
국적: 독일(서독)
생년월일: 1945.09.11.
활동 기간: 1964~1983
주요 소속팀: 바이에른 뮌헨, 뉴욕 코스모스
그 어떤 반박과 부정의 여지를 주지 않는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로, 침체되어 있던 바이에른 뮌헨과 독일 축구를 세계 최강자의 자리에 올린 전설이다. 바이에른 뮌헨에서 커리어의 대부분을 보내며 4번의 분데스리가 우승과 4번의 DFB 포칼 우승, 3번의 유로피언 컵 우승과 1번의 인터콘티넨탈 컵 우승, 1번의 유로피언 컵 위너스 컵 우승을 이뤄냈다. 분데스리가 3연패와 유로피언 컵 3연패를 모두 이루어낸 위업을 달성했다.
독일 국가대표팀에서도 UEFA 유로 1972 우승과 1974 FIFA 월드컵 우승을 이뤄냈고 1966 FIFA 월드컵 준우승, 1970 FIFA 월드컵 3위, UEFA 유로 1976 준우승도 이뤄냈다. 그 과정에서 3번의 월드컵에서 모두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고 2번의 유로에서 모두 토너먼트의 팀에 선정되었으며 1974 FIFA 월드컵에서는 실버볼을 수상하였다.
필드 전체를 자유롭게 누비며 본인의 영향권으로 만드는 진정한 의미의 자유인이었으며 이러한 스타일의 게르만 리베로를 창시한 시조이다. 3선 미드필더로 뛰던 시절에도 훌륭한 플레이메이킹과 빈틈 없는 대인 마크로 이름을 날리며 역대 최고 수준의 하프백으로 평가받았지만 리베로로 보직을 변경한 이후로 더욱 빛을 발하며 압도적인 역대 최고의 수비수이자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올라섰다.
예측 불가의 활동 범위로 신출귀몰한 움직임을 가져가며 공수에 모두 가담하였는데 특히 수비 상황에서의 광범위한 커버와 최후방 스위핑으로 리베로의 정점에 올랐고 공격 상황에서는 공 순환과 전진에 깊이 관여하며 팀이 필요로 하는 모든 곳에 매 순간 나타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광활한 시야로 경기 전체를 완벽하게 읽으며 경기 흐름을 조율하는 능력은 역대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들과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었고, 기습적인 속공으로 순식간에 상대 수비를 무너뜨리는 것에 매우 능했다. 이러한 상식을 벗어나는 플레이들을 가능케 하는 완벽한 기술적 완성도는 당연히 전제로 깔고 평가한다.
이러한 활약으로 키커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의 팀에 무려 12번 선정되었고 독일 올해의 축구선수를 4번 수상하였으며 키커 랑리스테에서 무려 27번의 WK(Weltklasse) 등급을 평가받았다. 또한 1972년과 1976년에 발롱도르를 수상하였고 1974년과 1975년에는 발롱도르 2위에 올랐으며 무려 10년 연속으로 발롱도르 5위 이내에 진입하는 비인간적인 기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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