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TOP20~11입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선정입니다. 주관적이지만 중립은 최대한 지켰습니다.
Rank 20
Karlheinz Förster
칼하인츠 푀르스터
국적: 독일(서독)
생년월일: 1958.07.25.
활동 기간: 1977~1990
주요 소속팀: VfB 슈투트가르트, 마르세유
축구 역사상 최고의 대인 마커 중 하나이자 슈투트가르트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커리어의 대부분을 슈투트가르트에서 보내며 1번의 분데스리가 우승과 1번의 DFB 포칼 준우승을 이뤄냈다. 이후 마르세유에서 말년을 불태우며 2번의 디비지옹 1 우승과 1번의 쿠프 드 프랑스 우승을 이뤄냈다. 독일 국가대표팀에서도 맹활약하며 UEFA 유로 1980 우승과 2번의 FIFA 월드컵 준우승을 이뤄냈다.
체격은 작았지만 기술과 지능을 바탕으로 한 거칠면서도 정교한 대인 수비의 달인이었으며 상대 공격수에게 공포를 심어준다 하여 천사의 얼굴을 한 악마라고 불렸고 세계 최고의 스토퍼로 인정받았다. 마찬가지로 대인 수비로 이름을 날렸던 기도 부흐발트, 자신의 친형 베른트 푀르스터와 함께 슈투트가르트 역사상 최고의 수비진을 구성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키커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의 팀에 2번 선정되었고 1986 FIFA 월드컵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으며 UEFA 유로 1980, 1984 토너먼트의 팀에 선정되었다. 또한 구에린 스포르티보 선정 월드 베스트 XI에 3번 선정되었고 옹즈 선정 유럽 베스트 XI에 6번 선정되었으며 1982년 독일 올해의 축구선수를 수상하였다.
Rank 19
Marcel Desailly
마르셀 드사이
국적: 프랑스
생년월일: 1968.09.07.
활동 기간: 1986~2006
주요 소속팀: 낭트, 마르세유, AC 밀란, 첼시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프랑스 축구의 황금기를 이끈 스토퍼로, 낭트에서 프랑스 수위급 센터백으로 이름을 알린 뒤 마르세유에서 1992-93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AC 밀란에서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아 2번의 세리에 A 우승과 1번의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이후 첼시에서도 전성기를 이어나가며 1번의 FA 컵 우승을 이뤄냈다.
프랑스 국가대표팀에서도 맹활약하며 로랑 블랑, 릴리앙 튀랑, 비셴테 리사라수와 함께 철의 포백을 구성하여 1998 FIFA 월드컵 우승, UEFA 유로 2000 우승, 2번의 FIFA 컨페더레이션스 컵 우승을 이뤄냈다. 이 과정에서 1998 FIFA 월드컵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으며 UEFA 유로 1996, 2000 토너먼트의 팀에 선정되었다.
강력한 피지컬과 운동 능력을 바탕으로 빈틈 없는 대인 수비와 넓은 수비 범위를 보여주었으며 공격 가담을 전담하던 리베로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준급의 볼 컨트롤과 패스 실력을 갖추어 현대적인 스토퍼의 모델을 보여주기도 했다. 축구 지능과 유틸리티 능력도 뛰어나서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월드클래스의 기량을 선보였다.
이러한 활약으로 옹즈 선정 유럽 베스트 XI에 4번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여담으로 1993-94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앞두고 바르셀로나의 요한 크라위프 감독은 드사이의 자존심이 상할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는데, 드사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결승전에서 바르셀로나의 중원을 상대로 맹활약하고 쐐기골까지 득점하며 밀란의 우승을 이끌었다.
Rank 18
Virgil van Dijk
버질 판 데이크
국적: 네덜란드
생년월일: 1991.07.08.
활동 기간: 2011~
주요 소속팀: 흐로닝언, 셀틱, 사우스햄튼, 리버풀
커리어 하이만큼은 21세기의 모든 수비수 중에서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대단한 고점을 보여준 선수로, 여러 클럽에서 쏠쏠한 활약을 펼치며 숨은 보석으로 평가받다가 사우스햄튼에서 리버풀로 당시 기준 수비수 역대 최고 이적료를 기록하며 이적하여 날개를 펼쳤다. 리버풀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2018-19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고 2019-20시즌 프리미어리그 출범 후 리버풀의 첫 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1번의 FA 컵 우승을 이뤄냈다.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펼치며 2019 UEFA 네이션스리그 토너먼트의 팀에 선정되었고 2022 FIFA 월드컵에서도 오랑예 군단의 주장으로서 팀을 8강으로 이끌었다.
압도적인 피지컬과 운동 능력에 더해 심리전을 활용하여 상대 공격수와의 일대일 승부에서 거의 지지 않았으며 날카로운 태클과 지능적인 예측 수비 등 완벽한 수비 스킬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광범위한 커버, 훌륭한 제공권 장악, 정확한 클리어링, 강력한 수비라인 지휘 능력 등 수비수에게 요구되는 모든 덕목을 겸비하였고 뛰어난 볼 컨트롤과 패스로 후방 빌드업을 주도했고 기습적으로 직접 공을 몰고 올라가는 전진성도 갖추었다. 이러한 기량으로 2010년대 후반 볼 플레잉 디펜더의 유행을 선도했으며 많은 전문가로부터 가장 이상적인 수비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활약으로 프리미어리그 PFA 올해의 팀에 3번 선정되었고 ESM 올해의 팀에 3번 선정되었으며 UEFA 올해의 팀에 3번 선정되었고 FIFA FIFPro 월드 XI에 3번 선정되었다. (모두 2019, 2020, 2022) 특히 2018-19시즌에는 상술한 모든 팀에 선정됨과 더불어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와 PFA 선수 선정 올해의 선수, UEFA 챔피언스리그 시즌의 수비수, UEFA 올해의 선수를 모두 쓸어갔으며 발롱도르에서도 원맨캐리의 정점을 보여준 리오넬 메시와 치열한 경합을 벌였고 메시에 이은 2위를 기록했다.
Rank 17
Laurent Blanc
로랑 블랑
국적: 프랑스
생년월일: 1965.11.19.
활동 기간: 1983~2003
주요 소속팀: 몽펠리에, 생테티엔, 오세르, 바르셀로나, 마르세유,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프랑스 축구의 황금기를 이끈 수비라인의 리더로, 몽펠리에에서 오래 활약하며 1번의 쿠프 드 프랑스 우승을 이뤄낸 뒤 여러 팀을 떠도는 저니맨으로 커리어를 보냈다. 특히 오세르에서 1995-96시즌 구단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디비지옹 1 우승을 이뤄냈고 쿠프 드 프랑스 우승까지 차지하며 더블을 달성했다. 이후 바르셀로나, 마르세유를 비롯한 여러 클럽에서 활약을 이어나갔다.
프랑스 국가대표팀에서도 맹활약하며 마르셀 드사이, 릴리앙 튀랑, 비셴테 리사라수와 함께 철의 포백을 구성하여 1998 FIFA 월드컵 우승, UEFA 유로 2000 우승을 이뤄냈다. 이 과정에서 UEFA 유로 1992, 1996, 2000 토너먼트의 팀에 선정되었다.
커리어 초반에 공격형 미드필더로 화려한 테크닉을 자랑했으며 이후 수비수로 보직을 옮긴 이후에는 당대 최고의 리베로 중 하나로 활약했다. 냉철한 판단력과 날카로운 태클을 바탕으로 한 예측 수비, 효율적인 커버에 능했으며 장신에서 나오는 압도적인 제공권 장악과 훌륭한 수비라인 지휘 능력, 후방 빌드업 능력까지 겸비하였다. 또한 드리블과 패스 앤 무브를 활용한 폭발적인 전진성을 갖췄으며 전방에서 플레이메이킹에 관여하기도 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1990년 프랑스 올해의 선수를 수상하였고 ESM 올해의 팀에 3회 선정되었으며 2000년에는 인터 밀란 올해의 선수인 피라타 도로를 수상하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그는 아직까지도 몽펠리에 클럽 역사상 최다 득점자(83골)로 남아있다.
Rank 16
Carles Puyol
카를레스 푸욜
국적: 스페인
생년월일: 1978.04.13.
활동 기간: 1999~2014
주요 소속팀: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와 스페인 축구의 최전성기를 이끈 주역이자 21세기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로, 바르셀로나에서 커리어의 전부를 보낸 바르셀로나의 원 클럽 맨이다. 바르셀로나에서 6번의 라 리가 우승과 2번의 코파 델 레이 우승, 3번의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바르셀로나가 자랑하는 유스 시스템 "라 마시아"가 낳은 축복이자 구단의 암흑기와 황금기를 모두 경험한 유스 출신 원 클럽 맨이자 리더이다.
스페인 국가대표팀에서도 수비진의 리더로 맹활약하며 UEFA 유로 2008 우승과 2010 FIFA 월드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UEFA 유로 2008 토너먼트의 팀에 선정되었고 2010 FIFA 월드컵 올스타 팀과 드림 팀에 모두 선정되었다. 또한 레알 마드리드의 주장 이케르 카시야스와 함께 스페인 국가대표팀 내부의 파벌을 없애며 팀을 하나로 융화시키기도 했다.
지능과 힘, 열정을 겸비한 수비수였던 푸욜은 적극적인 슬라이딩 태클과 대인 방어로 빈틈을 허용하지 않았으며 다소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위치 선정과 제공권을 보여주었다. 경기의 흐름을 읽고 좋은 위치를 미리 선점한 뒤 거친 경합도 마다하지 않으며 철벽처럼 상대 공격수를 방어했다. 볼 컨트롤의 안정감이 탁월하여 공격권 탈취 이후 후방 빌드업 단계로 이어가는 것을 잘 수행했고 세트 피스에서 효과적으로 공격에 가담하기도 했다. 또한 리더십과 수비 조율 능력이 뛰어났고 센터백과 라이트백을 모두 소화해내는 유틸리티도 대단했다. 반복된 무릎 부상으로 신체적인 능력은 계속 감소하였지만 축적된 경험을 활용하여 지능과 감각, 수비 기술로 부족함을 보완했던 노련한 선수이기도 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UEFA 올해의 팀에 6번 선정되었고 ESM 올해의 팀에 4번 선정되었으며 FIFA FIFPro 월드 XI에 3번 선정되었다. 또한 2006년에는 UEFA 올해의 클럽 수비수와 문도 데포르티보 선정 올해의 스페인 선수를 수상하며 세계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임을 인정받았다.
Rank 15
Jürgen Kohler
위르겐 콜러
국적: 독일(서독)
생년월일: 1965.10.06.
활동 기간: 1983~2002
주요 소속팀: 발트호프 만하임, 쾰른, 바이에른 뮌헨, 유벤투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축구 역사상 최고의 대인 마커 중 하나였던 1990년대 최고의 스토퍼로, 독일의 여러 클럽에서 활약하며 바이에른 뮌헨에서 1번의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냈고 이탈리아의 유벤투스에서 1994-95시즌 세리에 A, 코파 이탈리아 더블을 이뤄냈고 1992-93시즌 UEFA 컵 우승을 이뤄냈다. 이후 독일의 도르트문트로 잊거하여 2번의 분데스리가 우승과 1번의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1번의 인터콘티넨탈 컵 우승을 이뤄냈다.
독일 국가대표팀에서도 맹활약하며 1990 FIFA 월드컵 우승과 UEFA 유로 1996 우승, UEFA 유로 1992 준우승을 이뤄냈고 UEFA 유로 1992 토너먼트의 팀에 선정되었다.
강력한 피지컬과 교묘한 심리전에서 나오는 축구 역사상 최고 수준으로 손꼽히는 철벽같은 대인 수비와 스탠딩과 슬라이딩을 가리지 않는 날카로운 태클로 이름을 날렸으며 훌륭한 제공권 장악과 몸을 사리지 않는 허슬 플레이, 정확한 클리어링까지 겸비한 완벽한 스토퍼였다.
이러한 활약으로 키커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의 팀에 6번 선정되었으며 키커 랑리스테에서 무려 6번의 WK(Weltklasse) 등급을 평가받았다. 또한 1997년에는 도르트문트의 첫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끈 활약을 인정받아 독일 올해의 축구선수를 수상하였다.
Rank 14
Billy Wright
빌리 라이트
국적: 잉글랜드
생년월일: 1924.02.06.
활동 기간: 1939~1959
주요 소속팀: 울버햄튼 원더러스
1950년대 세계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이자 울버햄튼 원더러스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울버햄튼에서 커리어의 전부를 보낸 울브스의 원 클럽 맨이다. 울버햄튼에서 3번의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우승과 1번의 FA 컵 우승을 이뤄냈다.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펼쳤고 축구 역사상 최초로 A매치 100경기를 돌파하며 센츄리 클럽에 가입하였으며 삼사자 군단에서 통산 105경기에 출전했고 그 중 90경기에 주장 완장을 차고 나섰다.
수비수 치고 작은 체격이었지만 강한 투지와 허슬 플레이로 자신보다 큰 공격수들을 상대로 밀리지 않았으며 넓은 커버 범위와 뛰어난 예측 수비를 자랑했다. 또한 훌륭한 리더십으로 울버햄튼과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 모두 주장을 맡았으며 철인과 같은 자기관리로 1950년대를 통틀어 단 31경기만 결장하는 위엄을 보였다.
이러한 활약으로 1952년에 FWA 올해의 축구선수를 수상하였으며 1957년에는 발롱도르 2위에 올랐다.
Rank 13
Fabio Cannavaro
파비오 칸나바로
국적: 이탈리아
생년월일: 1973.09.13.
활동 기간: 1991~2011
주요 소속팀: 나폴리, 파르마,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유벤투스, 레알 마드리드
1990년대~2000년대에 걸쳐 세계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로 이름을 날렸던 선수로, 파르마에서 본격적인 첫 전성기를 맞아 2번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과 1998-99 UEFA 컵 우승을 이뤄냈다. 이후 유벤투스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며 2번의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으나 이 2번의 우승은 이후 칼치오폴리 스캔들로 인해 취소되었다.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2번의 라 리가 우승을 이뤄냈다.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서는 클럽에서보다 더한 맹위를 떨치며 2006 FIFA 월드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고 실버 볼을 수상하였다. 주장이자 수비라인의 리더로서 '카테나치오(빗장)'라고 불리는 아주리 군단의 수비진을 이끌며 단 2골만을 내주었는데 그 2골마저도 자책골과 페널티 킥이었으므로 필드골은 단 하나도 허용하지 않은 셈이었다. 이러한 퍼포먼스로 인해 칸나바로가 실질적인 골든 볼로 평가받는다. 또한 UEFA 유로 2000에서도 준우승을 이뤄내며 토너먼트의 팀에 선정되었다.
센터백 치고 단신이었으나 폭발적인 운동 능력을 갖추어 높은 점프로 제공권을 훌륭하게 장악하였으며 작은 체격에도 불구하고 힘으로 승부하는 적극적인 대인 수비를 펼쳤다. 또한 광범위한 커버와 날카로운 태클, 높은 수준의 예측 수비로 넓은 지역에서 공을 쓸어담는 최고의 스토퍼이자 최고의 스위퍼였다. 이러한 수비 스킬에 더해 훌륭한 수비라인 지휘 능력과 리더십, 안정적인 볼 컨트롤까지 겸비한 완성형 수비수였다.
이러한 활약으로 세리에 A 올해의 수비수를 2번 수상하였고 ESM 올해의 팀에 1번 선정되었으며 UEFA 올해의 팀에 1번 선정되었고 FIFA FIFPro 월드 XI에 2번 선정되었다. 특히 2005-06시즌/2006년에는 세리에 A 올해의 수비수, 세리에 A 올해의 이탈리아 축구선수, 세리에 A 올해의 축구선수를 모두 수상하였으며 상술한 월드컵에서의 활약까지 더해 월드 사커 선정 올해의 선수, FIFA 올해의 선수, 발롱도르를 모두 석권하며 축구선수가 단일 시즌에 받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수상을 쓸어담았다.
Rank 12
Alessandro Nesta
알레산드로 네스타
국적: 이탈리아
생년월일: 1976.03.19.
활동 기간: 1993~2014
주요 소속팀: 라치오, AC 밀란
1990년대~2000년대에 걸쳐 세계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로 이름을 날렸던 선수로, SS 라치오의 유스 출신으로 라치오에서 첫 전성기를 맞아 1번의 세리에 A 우승과 2번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 1번의 UEFA 컵 위너스 컵 우승을 이뤄냈다. 특히 1999-2000시즌 세리에 A와 코파 이탈리아를 모두 우승하며 더블을 달성했다. 이후 AC 밀란으로 이적하여 2번의 세리에 A 우승과 1번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 2번의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서도 맹활약하며 UEFA 유로 2000 준우승과 2006 FIFA 월드컵 우승을 이뤄냈고 전자의 대회에서 토너먼트의 팀에 선정되었다. 다만 잦은 부상으로 인해 많은 A매치에 결장했고 2006 FIFA 월드컵에서도 부상으로 인해 거의 출전하지 못했다.
폭발적인 운동 능력과 우아한 수비 스킬을 활용하여 대인 수비와 지역 방어에서 모두 완벽에 가까운 기량을 뽐냈으며 특히 정확하게 공만 건드리는 환상적인 슬라이딩 태클로 상대 공격수를 농락하며 예술적인 경지를 보여주었다. 또한 유려한 볼 컨트롤과 적절한 전진으로 팀 공격에 활기를 불어넣는 능력이 탁월했으며 오늘날의 기준에서 본다면 볼 플레잉 디펜더로 볼 수 있는 선수였다. 높은 수준의 예측 수비와 상대의 공격을 끊어냄과 동시에 곧바로 역습을 전개하는 전진 수비가 돋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1998년에 세리에 A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했고 2000년부터 2003년까지 4연속으로 세리에 A 올해의 수비수를 수상하였다. 또한 세리에 A 올해의 팀에 1번 선정되었고 ESM 올해의 팀에 1번 선정되었으며 UEFA 올해의 팀에 4번 선정되었고 FIFA FIFPro 월드 XI에 2번 선정되었다.
Rank 11
Gaetano Scirea
가에타노 시레아
국적: 이탈리아
생년월일: 1953.05.25.
활동 기간: 1972~1988
주요 소속팀: 유벤투스
1970~80년대 이탈리아 축구의 전성기를 이끈 리베로로, 커리어의 대부분을 유벤투스에서 보내며 7번의 세리에 A 우승과 2번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 1번의 유로피언 컵 우승, 1번의 유로피언 컵 위너스 컵 우승, 1번의 UEFA 컵 우승, 1번의 인터콘티넨탈 컵 우승을 이뤄냈다.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서도 맹활약하며 1982 FIFA 월드컵 우승을 이뤄냈고 UEFA 유로 1980에서도 토너먼트의 팀에 선정되었다.
미드필더 출신의 정통 리베로였는데 비교적 수비 커버에만 집중하는 이탈리안 리베로와는 다르게 최후방에서의 공격 전개도 주력으로 삼는 게르만 리베로 스타일의 선수였다. 빠른 스피드와 훌륭한 전술안으로 효율적으로 공수를 왕복하며 우아한 볼 컨트롤과 정확한 패스로 경기를 풀어나갔고 빈 공간을 완벽하게 틀어막았다. 거칠고 폭력적인 태클이 난무하던 시기에 시레아만큼은 깔끔한 수비와 페어 플레이를 추구하였으며 커리어 통산 단 한 번의 퇴장조차 당하지 않았다. 또한 최후방에서 빌드업의 기점이 되면서도 어느새 전방이나 측면의 빈 공간으로 치고 나가 필드의 판도를 바꾸었으며 아예 전방의 공격수처럼 움직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활약으로 1982년에 구에린 스포르티보 선정 세계 최우수 선수 2위에 선정되었다. 1992년부터 그의 이름을 따서 매 시즌마다 세리에 A 최우수 30세 이상 선수에게 가에타노 시레아 상이 수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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