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칼럼

[축구에 성역은 없다] 리뉘스 미헐스, 그는 왜 과대평가된 감독인가?

Griezee7 2025. 8. 11.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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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역사상 최고의 감독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그 이름, 리뉘스 미헐스. 

 

흔히 토탈풋볼의 창시자이자 1970년대 초반 아약스와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의 황금기를 이끌고 바르셀로나에 그 철학을 심은 명장으로 일컬어지는 인물로, 후대의 알렉스 퍼거슨, 펩 과르디올라, 아리고 사키와 함께 축구 역사상 최고의 감독으로 논해진다. 

 

그러나 미헐스와 당대 축구에 대해 깊게 알아보면 '미헐스가 그 정도의 감독이라고?'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왜 그는 과대평가된 감독인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먼저 미헐스가 고평가받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자. 

 

미헐스를 높게 평가하는 주장은 큰 틀에서 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그저 그런 팀이었던 아약스를 네덜란드 최고의 명문팀이자 유럽 내에서도 손꼽히는 강팀으로 성장시킨 능력 

2. 축구 전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 '토탈풋볼'을 만들어낸 혁명가로서의 영향력과 상징성 

3. 아약스와 네덜란드 국가대표팀, 바르셀로나의 황금기를 이끌며 수많은 우승을 이뤄낸 커리어 

 

이 근거들은 역시 큰 틀에서 보면 사실이지만, 일종의 과대포장이다. 저 문장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마치 미헐스가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혼자서 거대한 신전을 건축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보다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 

 

그럼 리뉘스 미헐스에 대한 심층 조사, 시작한다. 그를 조사하는 관점도 크게 두 가지에 나눠서 설명할 예정이다. 

 

 

 

I. 그의 성공을 보장했던 페르소나, 요한 크라위프 

 

먼저 짚고 넘어갈 것은 바로 그의 감독 커리어 최고의 선수이자 그가 겪은 대부분의 성공에 함께했던 요한 크라위프의 존재이다. 크라위프의 존재는 미헐스의 커리어에 있어서 최고의 행운이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미헐스는 크라위프가 없이는 자신의 이상을 필드 위에 실현시키지 못했거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반면에 크라위프는 미헐스의 지도 없이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타임라인을 살펴보면, 아약스의 성장을 비롯해 에레디비시 우승과 첫 유로피언 컵 우승은 미헐스가 이끈 것이 맞다. 물론 그 모든 과정에 크라위프가 함께했다. 그러나 유로피언 컵 3연패 중 첫 번째 우승을 제외한 뒤의 두 번의 우승은 미헐스가 이끈 업적이 아니다. 그 중에는 아약스 구단의 유일한 트레블도 포함되어 있다. 즉, 트레블을 포함한 2번의 유럽 제패는 미헐스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당시의 감독은 누구였느냐? 루마니아 출신의 감독 슈테판 코바치이다. 그 역시 유럽 축구계에 많은 족적을 남긴 명장임에는 이견이 없으나, 미헐스만큼 높이 평가받는 인물은 아니다. 어쩌면 그의 이름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아약스의 트레블과 두 번의 유로피언 컵 우승은 미헐스의 것이 아니라 저 처음 들어보는 감독의 것이다. 

 

물론 미헐스의 영향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미헐스가 남기고 간 토탈풋볼과 호화로운 선수단이 있었기에 그가 떠난 뒤에도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미헐스가 초석을 쌓은 것은 인정하되 그 때의 주인공은 엄밀히 말해서 코바치와 그 휘하의 선수들, 특히 크라위프가 맞으며 그들에게 포커스가 맞춰져야 할 결과물들을 미헐스의 업적으로 편입시키긴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약스가 불세출의 명장 미헐스를 떠나보내고 그에 비해 능력이 상대적으로 뒤떨어지는 감독을 선임했음에도 불구하고, 미헐스 때보다 어쩌면 더 대단한 성과를 이루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한 가지 의문을 심어준다. '미헐스가 과연 아약스의 주인공이 맞았을까?' 

 

우리에게는 그 의문을 더 확대해볼 수 있는, 한 가지 증거가 더 있다. 바로 코바치에게 감독직을 물려주고 난 직후 미헐스는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가이다. 미헐스는 잘 알려진대로 바르셀로나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바르셀로나에서의 첫 2시즌 동안, 미헐스는 무관이었다. 그리고 마침 크라위프를 영입하고 나니, 크라위프의 영웅적인 대활약에 힘입어 거짓말처럼 라 리가 우승을 차지했다. 이것이 과연 우연일까? 

 

난 이것이 단순한 우연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헐스의 성공에 크라위프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이유를 나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헐스가 제창한 토탈풋볼은 매우 혁명적임과 동시에 난해하고 힘든 전술이었다. 그의 토탈풋볼은 11명이 모두 공격과 수비에 가담한다는 단순한 명제로 요약되기에 겉으로는 간단해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그것을 필드 위에서 구현하려면 선수들의 벌떼같은 움직임이 서로 꼬이지 않게 컨트롤하는 디테일이 있어야하며, 더 나아가 그것으로 성공을 거두려면 지치지 않는 체력과 어느 위치에서든 최적의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수준 높은 선수들이 받쳐줘야 한다. 그의 토탈풋볼은 일종의 조건부 성공이었으며 그 조건을 맞춰주는 존재가 바로 크라위프였던 것이다. 훌륭한 개인 능력과 동시에 토탈풋볼이라는 개념을 실제로 구현하게 해주는 필드 위의 사령관으로서의 전술적 능력을 갖춘 크라위프가 있어야, 미헐스의 토탈풋볼은 작동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월드컵 준우승을 차지한 1974년에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크라위프의 역대급 퍼포먼스와 하드캐리에 초점을 맞추지 미헐스의 전술과 지도력에 초점을 맞추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적다. 그 대회 최고의 감독을 논할 때도 보통은 기존의 '람바참바 풋볼' 대신에 안전하고 실리적인 전술적 접근을 택해 서독의 우승이라는 결과물을 내놓은 헬무트 쇤의 안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미헐스의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전술을 구현하고 성공을 보장해준 것은 선봉장이자 야전 사령관이었던 크라위프가 아닐 수 없었다. 미헐스가 아약스를 성장시키고 처음으로 유럽의 왕좌에 오른 그 과정은 역시 크라위프와 함께했다. 미헐스와 크라위프가 잠시 작별했던 기간, 미헐스는 바르셀로나에서 성공하지 못했지만 크라위프는 코바치와 함께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두 인물이 다시 결합하고 나서야 미헐스는 바르셀로나의 리그 우승과 네덜란드의 월드컵 준우승을 이룰 수 있었다. 

 

 

 

II. 토탈풋볼의 저작권 

 

사실상 이 글의 핵심이자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이다. 토탈풋볼은 미헐스 개인의 작품이 아니다. 

 

미헐스가 그의 페르소나 크라위프의 존재 덕분에 성공을 보장받았다는 앞선 문단의 내용은 미헐스의 위상과 권위에 완전히 흠집을 내지는 못한다. 미헐스가 고평가받는 가장 큰 요인은 바로 토탈풋볼의 창시자라는 영향력과 상징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주장하는 '토탈풋볼은 미헐스 개인의 작품이 아니다'라는 명제를 적용하는 순간 그를 과대포장하고 있던 껍질의 대부분이 벗겨진다. 

 

이에 관해서는 여기서 길게 얘기할 것이 없다. 내가 과거에 썼던 3부작의 칼럼인 『토탈풋볼의 두 거장』 시리즈로 대부분의 설명을 대체할테니 부디 읽어보기를 권한다. 미헐스가 아약스를 빅클럽으로 성장시킨 과정 또한 담겨있으니 이 부분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독자에게도 권하는 바이다. 

 

https://red-archive.tistory.com/49 

 

토탈풋볼의 두 거장 - 上

0. 토탈풋볼의 주인은 누구인가 토탈풋볼은 무엇인가. 많은 축구팬들에게 토탈풋볼은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받아들여진다. 아마 토탈풋볼이란 말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울 것

red-archive.tistory.com

 

https://red-archive.tistory.com/51

 

토탈풋볼의 두 거장 - 中

3. 에른스트 하펠의 마법 에른스트 하펠은 당대 유럽 축구계에서 가장 유망한 감독 중 한 명이었다. 선수 시절 월드클래스의 중앙 수비수였던 하펠은 뛰어난 수비력 못지 않게 공격 가담에 능했

red-archive.tistory.com

 

https://red-archive.tistory.com/54

 

토탈풋볼의 두 거장 - 下

4. 리뉘스 미헬스와 12사도, 영광의 아약스 하펠의 대성공, 그것도 부임하자마자 이뤄낸 업적에 크게 자극받은 미헬스는 큰 결단을 내린다. 바로 페예노르트의 4-3-3 포메이션을 아약스에 도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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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자면, 토탈풋볼은 미헐스가 혼자 생각하고 정립한 개념이 아닌, 에른스트 하펠이라는 또 다른 거장과 함께 서로 경쟁을 통해 발전시켜나간 개념이라는 것이다. 또한 두 사람의 토탈풋볼은 차이점이 있었는데, 미헐스의 것은 과하게 이상적이며 구현하기 어려운 개념이었고 하펠의 것은 보다 선수들에게 친화적이고 현대의 전술과 닮아있던 미래지향적인 개념이었다. 

 

나는 여기서 하펠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토탈풋볼의 마지막 퍼즐 조각을 맞춰준 것은 1970년 하펠의 페예노르트가 선보인 4-3-3 포메이션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결정적으로, 토탈풋볼의 철학적 의미를 되새길 때 현대까지도 이어지는 영향력에는 하펠의 색채가 더 진하게 묻어나온다고 보기 때문이다. 

 

토탈풋볼이라는 단어를 당대를 풍미한 전술이라는 실체로 바라볼 때는, 당대에 큰 충격을 안겨준 미헐스의 그 벌떼같이 뛰어다니는 전술을 지칭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후대에 영향을 미친 철학으로 바라볼 때는, 시대를 앞서나가 21세기의 축구의 프로토타입을 보여준 하펠의 전술을 이야기해야 맞다고 본다. 

 

토탈풋볼의 주인은 두 명이고, 굳이 한 명을 뽑으라고 한다면 그 의미에 따라 달라진다. 이 문제는 사실 철학적인 문제에 가까우므로 주관에 따라 다른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절대적인 사실은, 토탈풋볼이 미헐스 혼자만의 것이라는 명제는 틀렸다는 것이다. 

 

 

 

III. 기타 반론에 대한 대답 

 

미헐스는 토탈풋볼을 혼자 만들어낸 것도 아니고, 그마저도 크라위프라는 페르소나가 있어야 성공했다는 것을 위의 두 문단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미헐스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몇 가지 반론을 통해 그를 옹호할 수 있다. 

 

"미헐스가 아약스를 성장시킨 초기를 되짚어보면, 그가 선수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능력이 뛰어났다고 볼 수 있지 않는가? 잘 언급되지 않지만 이것 또한 그의 업적이다." 

 

"그리고 네덜란드 대표팀의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인 유로 1988에 대해서는 왜 이야기하지 않는가? 그 때의 감독이 미헐스였다." 

 

나도 안다. 그걸 이제부터 얘기해보려는 것이다. 

 

먼저 미헐스가 아약스를 성장시킨 과정에 대해서는 위에 링크를 첨부한 『토탈풋볼의 두 거장 - 上』에 잘 나와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읽었다는 전제로 내 의견을 이어나가자면, 미헐스가 선수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능력이 뛰어났던건 맞지만 어느 정도는 운과 지원이 따랐으므로 완전히 그의 덕택이라고 미화하는 것은 조금 부풀려진 주장이다. 그는 자신의 토탈풋볼을 위해 급이 높은 선수단을 원했고 많은 선수들을 영입했다. 자신이 원하는 선수들을 영입하기 위해 구단으로부터 적지 않은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 그리고 클럽 유스에서 요한 크라위프라는 재능이 얻어걸린 행운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미헐스의 공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과장을 지양하자고 얘기하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유로 1988 우승. 미헐스가 잘한 것은 맞다. 그러나 그에게는 마르코 판 바스턴, 뤼트 휠리트, 프랑크 레이카르트라는 오렌지 삼총사를 비롯하여 직전 시즌 PSV의 트레블을 이뤄낸 주역들을 포함한 호화로운 스쿼드가 있었다. 실제로 이 대회 역시 1974년과 마찬가지로 미헐스가 아닌, 결승전에서 아름다운 발리 슛으로 득점한 마르코 판 바스턴이 주인공인 판 바스턴의 대회로 기억되지 않는가? 

 

대회 최고의 감독 역시 미헐스보다는, 상대적으로 약한 전력의 선수단을 가지고 준우승을 이뤄낸 소련의 발레리 로바노우스키를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래야만 한다고 본다. 당시 소련 축구계를 대표하던 명장인 로바노우스키는 팀을 하나로 묶고 강력한 압박과 조직력으로 성과를 냈으며 심지어 조별 리그에서 네덜란드와의 맞대결을 승리하기도 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미헐스의 공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과장을 지양하자고 얘기하는 것일 뿐이다. 

 

 

 

미헐스는 훌륭한 감독이며 역사에 길이 남을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이 맞다. 그러나 그를 역사상 최고의 감독으로 추대하는 주장에는 여러 가지 허점이 있으며, 그의 독보적이었던 위상은 이제는 허상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으면 한다. 최고의 선수와 구단의 지원 없이는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라이벌과 함께 이루어낸 전술사 최대 업적을 혼자서 독식하고, 자신이 성과를 낸 대회에서 주인공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인물이 감독계의 GOAT가 되어서 되겠는가?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그는 감독계의 역대급 인물은 맞다. 능력이 뛰어난 것은 분명했고, 성과 역시 뚜렷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대 최고를 다투는 위치에 오르기에는 부족한 점이 분명히 존재하는 감독이라는 것이다. 내가 평가하는 그의 적절한 위치는, 축구 역대 6위 정도가 아닐까 하고 조심스레 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