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칼럼

역사상 최고의 윙어, 가린샤의 드리블 (feat. 조지 베스트)

Fio de Esperança 2022. 10. 18.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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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린샤의 플레이를 보면 고전적인 윙어의 정점에 서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일반적으로 가린샤의 플레이 스타일이 어떻게 알려져있는가? 클래식 라이트윙, 드리블러, 굽은 다리를 이용한 드리블 등 몇 가지 수식어가 통용된다. 그럼 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리블을 했나? 굽은 다리가 어떤 이점으로 작용했나? 이걸 지금부터 말해볼 것이다. 

그 전에 잠시 주제를 바꾸어 드리블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찰해보자. 드리블은 공을 몰고 전진하는 것이고 상대 수비가 있으면 제치고 가야한다. 이게 드리블의 본질이다. 이것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바로 전진과 추월이다. 전진은 문자 그대로 앞으로 가는 것이고, 추월은 보다 발전된 개념으로 상대보다 앞으로 가는 것이다. 전진은 드리블의 목적이고, 추월은 상대 수비를 제치고 그보다 앞서나가는 행위에 해당한다. 추월은 더 효과적으로 전진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리고 이걸 잘 하는것이 좋은 드리블과 나쁜 드리블을 가른다. 

훌륭한 드리블러들이 다 그러듯이 가린샤는 이 추월에 능했다. 특히 자기보다 앞선 위치에서 막아서는 상대 수비와의 1대1 승부에서 완벽에 가까운 실력을 자랑했다. 이 1대1이야말로 드리블러의 실력을 가장 잘 드러내는 일기토다. 공격과 수비 모두 준비된 상태로 승부하기 때문이다. 

야구에 이런 말이 있다. 타격은 타이밍이고 투구는 그 타이밍을 뺏는 것이라고. 드리블도 마찬가지다. 서로의 타이밍을 속여야한다. 준비된 상태로 각을 좁히는 수비를 어떻게 속여서 무력화시키고 열린 공간으로 나아갈 것인가? 이게 드리블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서론은 여기까지 하고, 본격적으로 가린샤가 어떻게 상대 수비를 무력화시켰는지 살펴보자. 영상은 알아서 찾아보길 바란다. 

우선 시대가 시대이다보니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의 종류 등에 제약이 있는 것은 감안해야한다. 가린샤 역시 다양한 기술을 구사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고, 드리블의 기본기라고 할 수 있는 페인팅과 순간 가속을 매우 잘 했다. 왼쪽과 오른쪽 중 어느 방향으로 치고 나갈 것인지 바디 페인팅과 헛다리를 통해 간을 보다가 상대의 역동작을 유도하고 순간적으로 한쪽으로 치고 나간다. 이게 당대까지의 일반적인 윙어의 드리블이었고 가린샤는 이 틀을 벗어난 혁신적인 기술을 보여줬다기보다는 그런 일반적인 플레이에서 최고였다. 

가린샤가 고전적인 드리블 스타일에서 정점에 올랐다는 것은 충분히 강조했다고 생각하니 다음으로 넘어간다. 가린샤가 드리블을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 보자. 그의 큰 특징 몇 가지를 소개한다. 

 

 

1. 굽은 다리로 인한 특유의 자세 

다리가 굽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몸 전체가 휜 특유의 자세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무게중심이 낮아서 밸런스가 좋았고, 그 자세 덕분에 뱡향을 바꿔도 불안정하지 않았으며 발재간을 부리기도 좋았고 특히 순간 가속에 유리했다. 

나는 그 순간 가속의 유리함에 포커스를 맞추고 싶다. 일반적인 드리블러들은 한쪽으로 치고 나가기 전에 일종의 준비 단계가 필요하다. 몸을 한 번 더 낮추고 다리를 돌려야한다. 직접 해보면 알 것이다. 그러나 가린샤는 그게 필요없다. 이미 다리가 굽어있고 몸이 낮춰져있기 때문이다. 바디 페인팅과 헛다리로 상대의 혼란과 역동작을 유도하고 빈틈이 만들어진 순간에 즉시 치고 나가면 된다. 

 


2. 긴 터치 

앞서 말한 장점과도 연관된다. 보통 터치가 길면 다음 터치까지의 시간이 길기 때문에 한 번 제친 수비수가 다시 따라붙을 시간도 그만큼 길게 주어진다. 그러나 가린샤는 순간 가속을 일반적인 선수 이상으로 해내기 때문에 그 리스크가 줄어든다. 

그러면 이 긴 터치가 주는 이점이 무엇인가? 가린샤가 상대 수비를 완벽하게 무력화시키기 위해 여러 번 방향을 바꿀 때, 터치가 길면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 생각해보자. 상대 수비수가 다시 따라붙을 시간이 길면 그만큼 속력을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그 상태에서 가린샤가 의도적으로 다시 방향을 바꾸면, 이미 가속한 상태에서 다시 방향을 바꿔야하는 상대는 더 크게 역동작이 걸린다. 완벽한 추월을 목적으로 하는 반복되는 방향 전환에는 짧은 터치보다 긴 터치가 더 도움이 된다. 

 


3. 느린 템포 


드리블은 전진이 목적이고 속도가 생명이다. 1대1 승부에서 이겨서 한 명의 수비수를 제쳤다고 해도 그게 빠르지 못하면 다른 수비수들이 내려앉아서 수비진을 형성하게 된다. 당연히 빠른 스피드를 유지하며 돌파하는 것에 유념해야한다. 0.1초라도 빨리 돌파해야하는 속공 상황에서는 당연하고, 느리더라도 확실히 공간을 열어야하는 지공에서도 빈틈이 보이면 바로 다음 플레이로 넘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가린샤 역시 빠른 스피드로 돌파했다. 가린샤의 드리블의 템포가 느리다는 것은 상황을 조금 구분할 필요가 있다. 상대의 수비 진형이 갖춰진 상태로 아군이 지공을 할 때의 이야기다. 

일반적으로는 이런 상황에서 상대를 한 번 제치면 신속하게 다음 행동을 한다. 그러나 가린샤는 템포 유지 대신 확실한 무력화를 더 선호했다. 한 번 제쳐도 다시 여러번 방향을 전환하며 상대 수비가 자신을 따라오지 못할만큼 거리를 벌린다. 그의 영상을 보며 처음에는 공을 너무 질질 끄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계속 보면서 그가 애매하게 템포를 유지하며 급하게 다음 플레이를 하는게 아니라 잠시 늦춰지더라도 눈 앞의 상대를 확실하게 죽이고자 하는 것이라는걸 깨달았다. 

 


4. 골라인 바로 앞에서 아슬아슬한 크로스 

가린샤의 영상에서 자주 나오는 장면이다. 골라인 쪽으로 돌파한 뒤 공이 나가기 직전에 아슬아슬하게 크로스를 올린다. 이것도 특유의 낮은 자세에서 나오는 안정감이 받쳐주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보통은 급하게 크로스를 올리면 공을 정확히 차기 어렵다. 그러나 그런 '급해 보이는' 자세에 익숙한 가린샤는 그런 상황에서도 비교적 정확한 킥을 할 수 있었다. 

2번 특징과도 연관된다. 긴 터치는 한 번에 깊게 파고들기에 유리하다. 그러나 가까운 거리에서 상대 수비가 가로막고있을 때 길게 터치했다가는 공 소유권을 뺏기게 되므로 필요할 때 적절히 해야한다. 길게 터치해도 괜찮은 상황 중의 하나가 바로 측면에서 깊게 돌파할 때이다. 상대 수비가 몰려있지 않은 구석에서는 긴 터치를 이용하여 치고 달리는 것이 유용하다. 그러나 그런 골라인 근처의 깊은 구석은 가봤자 할 수 있는게 별로 없다. 그러나 가린샤는 그런 깊은 위치에서도 정확하게 크로스를 할 수 있었기에 이는 오히려 장점이 되었다. 

 

 

5. 의외로 잘하는 플레이메이킹 

펠레에 이은 2인자로 활약했던 브라질 국가대표팀에서 말고, 그가 1옵션으로 기량을 완전히 펼칠 수 있었던 보타포구에서는 플레이메이킹도 자주 보여줬다. 펠레의 부상으로 가린샤가 이끌었던 1962년 월드컵에서도 마찬가지다. 측면과 중앙을 오가며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걸 위해서는 넓은 활동 반경이 필수적이다. 드리블을 할 때 터치를 길게 하며 넓은 공간을 사용했기에 의도적으로 넓은 공간을 휘젓는 것에 익숙했을 것이다. 


바로 이런 점들이 가린샤를 최고의 드리블러이자 윙어로 만들어줬을 것이다. 

덤으로, 비슷한 시대의 다른 선수와 대조해보도록 하자. 

 

 

남아메리카에 가린샤가 있었다면 유럽에는 조지 베스트가 있었다. 가린샤와 베스트의 스타일이 달랐는데 이것이 굉장히 재미있다. 

가장 큰 차이점을 꼽자면, 베스트는 빠른 템포가 눈에 띄었다. 이는 빠른 템포를 유지한 상태에서도 상대 수비를 충분히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고평가하고 선호하는 개인기가 바로 스텝오버다. 감속을 최소화하면서 상대 수비수를 무력화시키고 제칠 수 있다는 치명적인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베스트가 바로 이 스텝오버에 능했다. 스텝오버로 상대 수비수를 하나하나 무너뜨리고 돌파하는 모습을 보면 그저 경이롭다. 

밀집수비를 상대할 때는 반드시 속도를 줄이게 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상황에서도 소위 말하는 팬텀 드리블을 구사하여 여러 명을 효과적으로 뚫어냈다. 사용한 기술들을 보면 베스트는 가린샤보다 짧은 터치로 공을 발에 가깝게 붙였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빠른 템포를 유지하는 것과 상대를 완벽하게 제치는 것, 무엇이 더 낫다고 결론지을 수는 없다. 짧은 터치와 긴 터치도 마찬가지다. 우열은 없다. 그냥 선호하는 스타일의 차이일 뿐이다. 그래서 가린샤와 베스트 모두 역대 최고의 드리블러 중 하나이다. 

 

 

개인적으로 더 선호하는 스타일은 조지 베스트다. 둘 다 상대 수비와의 1대1을 완벽하게 이기는 경지에 있는데 그렇다면 템포가 더 빠른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1대1 돌파 이후의 플레이도 더 다이렉트한게 좋다. 더 빠르게 골문을 타격할 수 있는 플레이. 측면에서 전진하고 크로스를 올리거나 2선의 처진 위치에서 플레이메이킹을 하던 가린샤에 비해, 베스트는 전방 중앙에 사선으로 파고드는 것에 더 능했고 그래서 직접 슈팅 찬스를 만들기도 더 좋았다. 슈팅 능력도 뛰어났기에 더욱 파괴적이었다. 즉 혼자서 1골을 만들어낼 수 있는 선수였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는 베스트가 가린샤보다 더 나았다. 

그러나 왜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윙은 베스트가 아니라 가린샤일까. 정답은 간단하다. 가린샤에게는 1962 월드컵에서의 엄청난 퍼포먼스라는 거대한 피크가 있다. 

이 두 선수가 역대 최고의 라이트윙을 다툰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나에게는 이 둘이 탑2다. 가린샤가 1위, 베스트가 2위. 이들이 스탠리 매튜스나 자이르지뉴, 루이스 피구보다 확연하게 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