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포지션별 순위/수비형 미드필더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TOP10~1

Griezee7 2025. 1. 28.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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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TOP10~1입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선정입니다. 주관적이지만 중립은 최대한 지켰습니다. 
 
 
 

Rank 10 

 

 

Obdulio Varela 

옵둘리오 바렐라 

 
국적: 우루과이 
생년월일: 1917.09.20. 
활동 기간: 1936~1955 
주요 소속팀: 몬테비데오 원더러스, 페냐롤 
 
1940년대 최고의 센터하프 중 하나로, 페냐롤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6번의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과 8번의 토르네오 데 아너 우승을 이뤄냈다. 우루과이 국가대표팀에서도 맹활약하며 1942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우승과 1950 FIFA 월드컵 우승을 이뤄냈다. 
 
강력한 파지컬을 활용한 철벽같은 수비력을 지녔지만 패스를 통한 볼 배급과 직접 슈팅을 통한 득점 생산에도 능했던 단점이 없는 미드필더였다. 또한 신체 그 이상으로 강력했던 정신력과 팀을 하나로 묶는 리더십으로 가장 잘 알려진 선수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일화가 바로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과의 경기이다. 브라질에서 열린 대회였고 대회 최강의 전력을 보유한 브라질을 상대로 우루과이는 당연히 열세가 점쳐졌다. 우루과이의 감독조차도 열세를 인정하고 수비축구를 지시하였고, 특히 브라질의 신문들은 이미 브라질의 우승이 확정된 것처럼 기사를 썼다. 그러나 바렐라만큼은 달랐다. 승리와 우승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던 바렐라는 브라질의 우승을 예상하는 신문들을 모두 모아놓고 그곳에 소변을 보는 퍼포먼스를 펼치며 팀의 사기를 드높였다. 덕분에 우루과이는 브라질에게 압도당하지 않고 본래의 페이스대로 경기를 펼쳤으며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어 대회를 우승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1942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최우수 선수를 수상하였으며 1950 FIFA 월드컵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Rank 9 

 

 

Fernando Redondo 

페르난도 레돈도 

 
국적: 아르헨티나 
생년월일: 1969.06.06. 
활동 기간: 1985~2004 
주요 소속팀: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테네리페, 레알 마드리드 
 
레알 마드리드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레알 마드리드에서 2번의 라 리가 우승과 2번의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1번의 인터콘티넨탈 컵 우승을 이뤄냈다. 테네리페에서의 활약과 2시즌 연속으로 레알 마드리드와의 리그 최종전에서 테네리페의 승리를 이끈 임팩트를 인정받아 블랑코스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2시즌 연속으로 레돈도의 테네리페에게 리그 최종전에서 패배하며 바르셀로나에게 우승을 내주었으나, 자신들에게 비수를 꽂은 바로 그 레돈도를 영입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에서도 맹활약하며 1992 FIFA 컨페더레이션스 컵 우승과 1993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냈다. 

 
넓은 활동 범위와 거칠지만 정교한 태클로 어디서든 공을 뺏어올 수 있었으며 부드러운 볼 컨트롤과 탈압박, 넓은 시야, 창의적인 패스를 통한 경기 조율 능력을 갖추었고 공을 몰고 직접 전진할 수도 있었던 만능 미드필더였다. 이러한 레돈도의 압도적인 능력 덕분에 그는 마드리드의 중원을 홀로 지탱하고 필드 위에 우아함을 구현한 선수로 자주 묘사된다. 실제로 레돈도 한 명이 발산하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1997-98시즌에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고 1999-00시즌에는 UEFA 올해의 클럽 선수를 수상하였으며 레알 마드리드 올해의 선수도 2번 수상했다. 발롱도르에서도 2000년에 최고 순위 18위를 기록했다. 또한 1992 컨페더레이션스 컵 골든볼을 수상하기도 했다. 
 
 
 

Rank 8 

 

 

Toninho Cerezo 

토니뉴 세레주 

 
국적: 브라질 
생년월일: 1955.04.21. 
활동 기간: 1972~1997 
주요 소속팀: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AS 로마, 삼프도리아, 상파울루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에서 7번의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우승과 2번의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 A 준우승을 이뤄냈고 로마에서 2번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과 1번의 유로피언 컵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삼프도리아에서 1번의 세리에 A 우승과 2번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 1번의 UEFA 컵 위너스 컵 우승, 1번의 유로피언 컵 준우승을 이뤄냈고 상파울루에서 1번의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우승과 1번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1번의 수페르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2번의 인터콘티넨탈 컵 우승을 이뤄냈다. 브라질 국가대표팀에서도 맹활약했지만 우승과는 연이 없었다. 
 
'공의 주인'이라는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 공의 소유권을 되찾아오는 플레이와 그 이후 공격을 전개하는 플레이 모두에 뛰어났던 만능 미드필더였다. 엄청난 활동량으로 필드를 장악하고 날카로운 태클과 지능적인 인터셉트로 볼을 탈취했으며, 브라질리언다운 유려한 볼 컨트롤과 패스를 통한 플레이메이킹, 직접적인 공격 가담으로 팀 공격의 활로를 개척해냈다. 또한 미드필더의 모든 포지션을 소화해낼 수 있는 멀티성이 있었으며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약 20년 가까이 정상급 실력을 유지한 대단한 자기 관리 능력도 있었다. 브라질 국가대표팀에서는 지쿠, 소크라치스, 파우캉과 함께 황금의 4중주라 불린 역사에 남을 중원 조합을 형성하여 축구팬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이러한 활약으로 브라질 전국리그 최우수 선수인 볼라 지 우루를 2번 수상하였고 브라질 전국리그 베스트 XI인 볼라 지 프라타를 3번 수상하였으며 1993년에는 인터콘티넨탈 컵 MVP를 수상하였다. 또한 수비형 미드필더임에도 불구하고 1977년에 남아메리카 U-20 챔피언십에서 득점왕을 수상하는 이례적인 경험을 하기도 했다. 
 
 
 

Rank 7 

 

 

Luis Monti 

루이스 몬티 

 
국적: 아르헨티나 → 이탈리아 
생년월일: 1901.05.15. 
활동 기간: 1921~1939 
주요 소속팀: 우라칸, 산 로렌소, 유벤투스 
 
1920~30년대 최고의 하프백 중 하나로, 우라칸에서 1번의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을, 산 로렌소에서 3번의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을 이뤄내고 이탈리아로 떠났으며 유벤투스에서 4번의 세리에 A 우승과 1번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다.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에서는 1927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우승과 1930 FIFA 월드컵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서는 1934 FIFA 월드컵 우승과 1933-35 중유럽 컵 우승을 이뤄냈다. 
 
피치 위를 광활하게 커버할 수 있는 폭발적인 활동량으로 인해 "Doble Ancho(두 개의 날개)"라고 불렸으며 거칠고 날카로운 태클로 상대 공격수를 무력화시키는 무자비한 선수였다. 보통 몬티 하면 이러한 지치지 않고 잔혹한 하드 워커의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의외로 패스와 창의성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어 공을 빼앗은 후 공격 플레이를 시작할 수 있던 선수이다. 
 
이러한 활약으로 1930, 1934 FIFA 월드컵 올스타 팀에 연달아 선정되었다. 
 
 
 

Rank 6 

 

 

Rodri 

로드리 

 
국적: 스페인 
생년월일: 1996.06.22. 
활동 기간: 2015~ 
주요 소속팀: 비야레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맨체스터 시티 
 
현재까지 유일하게 발롱도르를 수상한 수비형 미드필더이자 향후 역대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 오를 수도 있는 선수로, 맨체스터 시티에서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지도 아래 기량을 만개하며 프리미어리그 4연패와 1번의 FA 컵 우승, 1번의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1번의 FIFA 클럽 월드컵 우승을 이뤄냈다. 특히 2022-23시즌에는 트레블을 달성했다. 스페인 국가대표팀에서도 맹활약하며 UEFA 유로 2024 우승을 이뤄냈다. 
 
단점이 없다. 장점은 많다. 지금까지 수비형 미드필더가 가졌던 것으로 인식된 모든 한계를 깨부수고 한 포지션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그대로 조각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완벽한 기량과 경기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다. 강력한 피지컬과 날카로운 태클, 제공권 장악으로 수비라인을 철벽처럼 보호하며 공격권 탈취 이후의 영향력도 매우 우수하다. 부드러운 볼 컨트롤로 손쉬운 탈압박을 보여주며 훌륭한 패스 능력으로 팀 빌드업의 기점과 플레이메이킹의 리더를 모두 해낼 수 있다. 패스 길이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며 경기 조율, 다이렉트한 찬스메이킹 모두에 능하다. 또한 수비형 미드필더임에도 불구하고 빼어난 득점력까지 갖추었다. 2022-23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결승골을 기록하기도 했고, 발롱도르를 수상하게 된 2023-24시즌에는 50경기 9골 13도움이라는 대단한 공격 포인트 생산 능력을 증명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프리미어리그 PFA 올해의 팀에 2번 선정되었고 2024년 FIFA FIFPro 월드 XI에 선정되었으며 2022-23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시즌의 팀에 선정되었다. 또한 2022-23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시즌 최우수 선수를 수상하였고 2023 FIFA 클럽 월드컵 골든볼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UEFA 유로 2024 토너먼트의 팀에 선정되었으며 대회 최우수 선수를 수상하였다. 이러한 단기간의 역사적인 활약이 합쳐져 2024년 발롱도르 수상이라는 대망의 금자탑을 쌓아올렸다. 상술한 개인 수상 커리어 외에도, 2023-24시즌 프리미어리그 최우수 선수를 받았어야 한다는 여론이 존재하며 UEFA 유로 2024에서 역대 최고 평점을 기록한 매체도 존재한다. 
 
 
 

Rank 5 

 

 

Bozsik József 

보지크 요제프

 
국적: 헝가리 
생년월일: 1925.11.28. 
활동 기간: 1943~1962 
주요 소속팀: 부더페슈트 혼베드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하나로, 부더페슈트 혼베드에서 선수 커리어의 전부를 보낸 부더페슈트 혼베드의 원 클럽 맨이다. 부더페슈트 혼베드에서 5번의 넴제티 버이녹샤그 우승을 이뤄냈다. 헝가리 국가대표팀에서도 매직 마자르의 전성기를 이끌며 1952 올림픽 축구 금메달과 1954 FIFA 월드컵 준우승을 이뤄냈다. 
 
딥라잉 플레이메이커의 개척자 계보의 일부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넓은 시야와 정확한 판단력, 정교한 패스를 바탕으로 팀의 후방 플레이메이킹을 지휘했으며 볼 컨트롤 능력과 대인 수비 능력, 슈팅 능력도 뛰어났다. 후방에서 경기를 조율하는 보지크가 있었기에 전방의 화려한 공격진이 상대를 교란하는 스위칭 플레이를 보여줄 수 있었으며 이는 당대 매직 마자르와 부더페슈트 혼베드가 보여준 강력한 소셜리스트 풋볼의 근간이 되었다. 
 
이러한 활약으로 1952년 헝가리 올해의 축구선수를 수상하였고 1954 FIFA 월드컵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으며 1956년에는 발롱도르 6위에 올랐다. 또한 헝가리 축구 최초의 FIFA 센추리 클럽 가입자이기도 한데 이는 세계에서도 2번째 기록이다. 
 
 
 

Rank 4 

 

 

Karel Pešek 

카렐 페셰크

 
국적: 체코슬로바키아(체코) 
생년월일: 1895.09.20. 
활동 기간: 1913~1934 
주요 소속팀: 스파르타 프라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하나로, 스파르타 프라하에서 커리어의 대부분을 보내며 3번의 체코슬로바키아 퍼스트 리그 우승과 5번의 중앙 보헤미안 카운티 리그 우승, 6번의 중앙 보헤미안 컵 우승, 1927 미트로파 컵 우승을 이뤄내며 "철의 스파르타"라고 불린 구단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이 "철의 스파르타"가 얼마나 강력했느냐 하면, 1920년부터 1923년까지 50경기 전승, 230득점 43실점이라는 무시무시한 전적을 세웠고 국제적으로도 전세계의 여러 강호들과의 친선 경기에서 많은 승리를 거둘 정도였다. 
 
페셰크는 그 "철의 스파르타"의 핵심이자 사실상 팀 전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슈퍼 에이스였다. 아이스하키 선수를 겸했을 정도로 엄청난 운동능력과 스포츠 지능을 탑재했으며 화려한 테크닉과 정교한 패스, 단단한 수비를 모두 지닌 당대 최고의 축구선수 중 하나였다.

체코슬로바키아 국가대표팀에서도 그의 맹활약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1920 올림픽 축구에서 체코슬로바키아를 결승전에 올려놓았다. 최소 은메달이 보장된 상황이었지만, 경기 도중 심판의 판정에 불만을 가진 페셰크는 동료들을 이끌고 경기장을 박차고 나가버렸는데 이 때문에 팀은 대회에서 실격되고 만다. 이 실격이 아니었으면 준우승을 거두었을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이 있는데, 페셰크는 이 대회 아이스하키에서도 동메달을 따냈고 만약 축구에서도 은메달을 따냈다면 인류 역사상 최초로 올림픽 하계 종목과 동계 종목에서 모두 메달을 딴 선수가 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활약으로 축구 역사 전문가들은 그를 1920년대 초반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평가하며 당시에 발롱도르와 같은 개념이 있었다면 1번쯤은 수상했을 선수로 보기도 한다. 
 
 
 

Rank 3 

 


 

Andrea Pirlo 

안드레아 피를로 

 
국적: 이탈리아 
생년월일: 1979.05.19. 
활동 기간: 1995~2017 
주요 소속팀: 브레시아, AC 밀란, 유벤투스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하나로, AC 밀란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2번의 세리에 A 우승과 1번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 2번의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1번의 FIFA 클럽 월드컵 우승을 이뤄냈고 유벤투스에서 전성기를 이어나가며 4번의 세리에 A 우승과 1번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 1번의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뤄냈다.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서도 맹활약하며 2006 FIFA 월드컵 우승과 UEFA 유로 2012 준우승을 이뤄냈다. 

 

'레지스타'라는 용어의 대명사이자 딥라잉 플레이메이커의 정수로 유명하다. 역삼각형 형태의 3미들에서 메짤라에게 더 많은 수비 가담을 요구하는 대신 자신의 수비 부담을 줄이며 처진 위치에서의 경기 조율에 집중하는 유형의 선수였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정교한 패싱 스킬과 광활한 시야, 그라운드 위의 마에스트로라고 할 수 있는 템포 조절과 기가 막힌 롱패스를 통한 기회 창출을 모두 완벽에 가깝게 갖추고 있었다. 본래 공격형 미드필더였기에 수준급의 발기술도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활약으로 세리에 A 올해의 팀에 4번 연속으로 선정되었고 세리에 A 올해의 축구선수를 3연속으로 수상하였으며 UEFA 챔피언스리그 시즌의 팀에 1번 선정되었다. 특히 2011-12시즌/2012년에는 세리에 A 도움왕, 세리에 A 올해의 미드필더, 세리에 A 올해의 팀, 세리에 A 올해의 축구선수, 구에린 도로, UEFA 올해의 팀, ESM 올해의 팀을 모두 싹쓸이하는 위엄을 보여주었다. 또한 2006 FIFA 월드컵 도움왕, 올스타 팀, 브론즈볼, 결승전 MOM에 올랐으며 해당 연도 FIFA FIFPro 월드 XI에 선정되었다. UEFA 유로 2012에서는 토너먼트의 팀과 MVP 2위에 올랐다. 발롱도르에 4번 노미네이트되어 모두 10위 안에 들었으며 특히 2007년에 최고 순위 5위를 기록했다. 

 

 

 

Rank 2 

 


 

Frank Rijkaard 

프랑크 레이카르트 

 
국적: 네덜란드 
생년월일: 1962.09.30. 
활동 기간: 1980~1995 
주요 소속팀: 아약스, AC 밀란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하나로, 아약스에서 5번의 에레디비시 우승과 3번의 KNVB 베커르 우승, 1번의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1번의 유로피언 컵 위너스 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AC 밀란에서 2번의 세리에 A 우승과 2번의 유로피언 컵 우승, 2번의 인터콘티넨탈 컵 우승을 이뤄냈다.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에서도 맹활약하며 UEFA 유로 1988 우승을 이뤄냈다. 

 

'허리케인'이라고 불릴 정도의 대단한 경기 영향력과 임팩트를 보여준 선수였다. 강력한 피지컬과 폭발적인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단단한 수비력과 왕성한 활동량을 통해 상대방을 숨막히게 압박했으며, 압박을 통해 공 소유권을 탈취한 이후에는 패스와 볼 키핑, 드리블을 통해 공격을 전개해나갈 수 있었다. 이러한 의외의 공격성 때문에 그는 소위 말하는 '6번' 위치가 아닌 '8번' 위치라는 견해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가 중앙 미드필더가 아닌 수비형 미드필더로 분류되는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유틸리티 능력이다. 3선 미드필더가 주 포지션이지만 센터백도 소화해낼 수 있었기에 종합적으로 수비형 미드필더에 가까운 포지션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이러한 활약으로 1985년과 1987년에 네덜란드 올해의 축구선수인 골든슈를 수상했으며 옹즈 몽디알에 5번 선정되었고 ESM 올해의 팀에 1번 선정되었다. 또한 1992년에는 세리에 A 최우수 외국인 선수와 올해의 축구선수를 모두 수상하였다. UEFA 유로 1988에서는 토너먼트의 팀에 선정되었고, 1988년과 1989년에는 2년 연속으로 발롱도르 3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Rank 1 

 

 

José Leandro Andrade 

호세 레안드로 안드라데 

 
국적: 우루과이 
생년월일: 1901.11.22. 
활동 기간: 1921~1935 
주요 소속팀: 베야 비스타, 나시오날, 페냐롤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들 중에서도 가장 앞선 평가를 받는 인물로, 나시오날에서 화려한 전성기를 누리며 1번의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페냐롤에서 2번의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과 2번의 준우승을 이뤄냈다. 우루과이 국가대표팀에서도 맹활약하며 2번의 올림픽 축구 금메달과 1930 FIFA 월드컵 우승, 3번의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우승을 이뤄냈다. 

 

당대, 아니 역대 최고의 라이트 하프였으며 수비형 미드필더와 라이트백이 할 수 있는 플레이를 모두 개척한 위대한 업적을 세웠다. 특유의 탄력적, 폭발적인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완벽한 수비력과 당시 기준 상상을 초월한 공격력을 모두 보여주었다. 당대로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웠던 후방 플레이어의 공격 가담을 활발히 수행했으며 운동능력과 화려한 테크닉을 통해 중앙과 우측면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것은 수비형 미드필더, 당대 하프백의 역할을 확장시킨 '진화'였으며 오늘날의 풀백, 윙백들이 보여주는 플레이를 한 세기 앞서서 선보인 '혁명'이었다. 

 

이러한 활약으로 1926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최우수 선수를 수상하였으며 1930 FIFA 월드컵에서도 비공식적인 브론즈볼과 올스타 팀에 올랐다. 선구자와 같은 업적을 널리 인정받아 은퇴 이후에도 여러 매체들에게 엄청난 고평가를 받고 있다. 

 

여담이지만, 어째서인지 국내외의 위키 사이트에서는 안드라데의 나시오날 커리어를 1924년부터로 소개하고 있는데, 정작 나시오날의 통계 사이트인 아틸리오(atilio.uy)에서는 안드라데의 나시오날 데뷔를 1925년으로 밝히고 있다. 잘못된 정보에 대한 수정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