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시각 2026년 2월 8일 치러진 슈퍼볼 LX는 시애틀 시호크스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저도 경기를 라이브로 봤지만, 개인 사정 상 블로그에 글을 올리지는 못하다가 뒤늦게 쓰게 됐습니다.
AFC 챔피언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와 NFC 챔피언 시애틀 시호크스의 맞대결은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하프타임 쇼 헤드라이너로는 라틴팝의 역대급 거물로 떠오른 배드 버니가 나서며 이 또한 화제가 되었죠.
경기 전 예상은 시호크스의 거의 압도적인 우세를 점치는게 대부분이었습니다. 두 팀 모두 정규시즌 14승 3패라는 훌륭한 성적을 거두었으나, 패트리어츠의 쉬운 일정과 NFC의 치열함을 고려하면 시호크스가 더 힘든 경쟁을 이겨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었을겁니다. 또한 이번 시즌의 시호크스는 공수양면+스페셜팀에 걸쳐 완성도 높은 강팀으로 평가받았기 때문에 객관적인 전력에서 앞섰습니다. 패트리어츠도 역시 공수 모두 강력해진 팀이었지만 그것이 시호크스의 수준으로 평가받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패트리어츠 전력은 치열한 정규시즌 MVP 레이스를 펼친 신성 쿼터백 드레이크 메이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데, 그 메이가 활용해야 하는 웨폰들의 질이 시호크스에 비해 떨어진다는 것이 약점이고, 플레이오프에서 강한 수비를 상대하면서 경기력이 하락했다는 점이 평가에 크게 작용했을 것입니다.
또한 이 맞대결은 특별한 서사들로도 주목받았습니다. 시호크스에게는 11년 전 슈퍼볼 맞대결의 복수를 할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고, 패트리어츠에게는 슈퍼볼 단독 최다 우승 팀이자 새로운 왕조를 세울 기회가 찾아온 것입니다. 두 쿼터백에게도 좋은 동기 부여가 있었습니다. 이번 시즌 불과 2년차지만 정규시즌 MVP 2위에 오르며 "톰 브래디의 진짜 후계자를 찾았다"라는 말이 나온 드레이크 메이는 당연히 브래디의 발자취를 따르기 위해서 슈퍼볼 우승이 필요했고,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는 평을 받은 채 여러 팀을 돌아다니다가 부활에 성공한 샘 다놀드는 슈퍼볼 우승으로 인간승리의 서사에 방점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누가 승자가 되어도 흥미로운 결말은 보장된 셈이었죠.
시호크스의 승리가 유력하지만 패트리어츠 팬인 저는 희망을 가지고 경기를 관전했습니다. 이미 정규시즌에서의 성과 만으로도 엄청난 대성공이지만, 그래도 기왕 올라온 슈퍼볼, 우승으로 마무리지어야하지 않겠습니까? 비록 과거의 영광과는 다르게 언더독의 위치에 있지만, 해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거 승리가 아니라 대참사만은 피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예상한대로 수비적인 경기가 되었지만, 시호크스는 필드골로 야금야금 점수를 쌓은 반면에 패츠는 공격을 오래 지속해보지도 못하고 펀트만 찼습니다. (펀트리어츠) 시호크스의 러닝백 케네스 워커 3세는 패츠의 강력한 러싱 디펜스를 무너뜨리기 시작했고, 설상가상으로 시호크스의 터치다운까지 나오며 점수는 크게 벌어졌습니다. 패츠는 0득점이라는 수치스러운 기록을 피하는게 우선인 상황까지 몰렸습니다.
그나마 경기 후반부 들어서 메이의 경기력이 조금 살아나며 추격을 시도했으나, 흐름을 가져오기 시작한 타이밍에 메이의 어이없는 패스 선택이 그대로 인터셉션되면서 희망이 꺼졌습니다. 이것에 관해서는 시호크스 디펜스가 패스러시를 함과 동시에 의도적으로 메이의 패스 선택지에 혼란을 주어 제대로 된 디시전을 못하도록 방해했다는 분석도 있었는데, 정말 대단한 수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쨌든 경기는 허무하게 시호크스의 대승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만, 패츠에게는 씁쓸함만 남았습니다. 암울했던 지난 몇 년을 깨끗하게 씻어낸 줄 알았지만, 진짜 슈퍼볼 챔피언 레벨과의 격차가 아직 남아있다는 것을 실감했으니까요. 암흑기에서 벗어나 강팀으로 다시 올라선 것은 맞지만,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습니다.
메이도 승부가 어느 정도 기운 시점에서 폼을 회복하며 추격을 시도했지만, 지난 슈퍼볼 때의 마홈스처럼 가비지 게임에서의 스탯 세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겉보기에는 개인 스탯은 크게 밀리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경기를 본 사람들은 다들 알 것입니다. 경기 내내 털리기만 하다가 의미 없는 스탯만 뒤늦게 쌓았다는 것을요.
슈퍼볼 MVP는 시호크스의 러닝백 케네스 워커 3세가 수상했습니다. 시호크스는 전체적으로 밸런스 잡힌 활약이 나왔지만, 가장 눈에 띈 것은 워커이긴 했습니다. 딱히 이견이 없는 수상일 듯 합니다.
아 참, 하프타임 쇼 얘기를 빼놓을 수 없죠. 배드 버니의 이번 하프타임 쇼는 일단 화제성으로는 역대급이었다는 것 같습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시청자 수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반응은 호불호가 많습니다. 아마 기존 하프타임 쇼들과는 다르게, 미국 문화가 아닌 라틴 아메리카 문화에 기반한 공연이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 가장 근본적인 이유이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사회적, 정치적인 이슈로 주목받은 쇼가 부정적인 반응을 얻는 것은 사실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일단 저는 사정이 있어서 하프타임 쇼를 제대로 못 봤기 때문에 이 이상의 말은 아끼겠습니다.
다시 한 번 시애틀 시호크스의 우승을 축하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축하합니다! (사진은 다놀드의 감동적인 서사를 담은 사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