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백 TOP20~11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백 TOP20~11입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선정입니다. 주관적이지만 중립은 최대한 지켰습니다.
Rank 20
Schubert Gambetta
슈베르트 감베타
국적: 우루과이
생년월일: 1920.04.14.
활동 기간: 1940~1960
주요 소속팀: 나시오날
1940~50년대에 걸친 세계 최고의 라이트 하프 중 하나로, 나시오날에서 커리어의 대부분을 보내며 10번의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과 3번의 코파 알다오 우승을 이뤄냈다. 우루과이 국가대표팀에서도 맹활약하며 1942 코파 아메리카 우승과 1950 FIFA 월드컵 우승을 이뤄냈다.
뛰어난 운동 능력을 바탕으로 한 단단한 대인 수비와 넓은 커버 범위로 이름을 날렸고 이 덕분에 1950 FIFA 월드컵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에이스 지지뉴와 아데미르를 묶어내는 등의 활약을 펼치며 극적인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1950 FIFA 월드컵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Rank 19
Branko Stanković
브란코 스탄코비치
국적: 유고슬라비아(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생년월일: 1921.10.31.
활동 기간: 1939~1958
주요 소속팀: BSK 베오그라드, 츠르베나 즈베즈다
1940~50년대에 걸친 세계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이자 유고슬라비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풀백 중 하나로, 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4번의 유고슬라브 퍼스트 리그 우승과 3번의 유고슬라브 컵 우승을 이뤄냈다. 유고슬라비아 국가대표팀에서도 맹활약하며 1948, 1952 하계 올림픽 축구 은메달을 이뤄냈다.
측면 수비수의 오버래핑을 보편화시킨 선구자 중 한 사람으로 높이 평가되며, 우측면의 넓은 공간에 지배력을 가졌다. 또한 매끄러운 수비와 뛰어난 킥으로도 이름을 날렸다. 넓은 공간을 종횡무진 누빈다 하여 사절단, 빌드업 과정에 높은 영향력을 끼친다 하여 사령관이라고 불렸다.
Rank 18
Nelinho
넬리뉴
국적: 브라질
생년월일: 1950.07.26.
활동 기간: 1970~1987
주요 소속팀: 크루제이루, 그레미우,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브라질리언 풀백의 계보를 훌륭하게 이은 공격형 라이트백으로, 크루제이루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4번의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우승과 1번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뤄냈고, 이후 그레미우에서 1번의 캄페오나투 가우슈 우승,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에서 4번의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우승을 이뤄냈다.
브라질 국가대표팀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펼쳤는데 특히 1978 FIFA 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 완벽한 감아차기로 중거리 골을 터트렸다.
공격적인 재능이 특출났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오른발 킥이 역대급의 수준을 자랑했다. 강력한 파워와 정밀한 조준은 물론이고 커브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감아차기 스킬이 대단했다. 이러한 킥을 바탕으로 당대에서 손에 꼽는 프리킥 스페셜리스트로서 맹활약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베스트 XI인 볼라 지 프라타를 4번 수상하였고 1975년에는 남아메리카 올해의 축구선수 4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Rank 17
Paul Janes
파울 야네스
국적: 독일(서독)
생년월일: 1912.03.11.
활동 기간: 1930~1951
주요 소속팀: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유럽 대륙 최초의 측면 수비수 중 하나이자 전간기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로,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에서 커리어의 대부분을 보내며 1번의 독일 챔피언십 우승을 이뤄냈다.
독일 국가대표팀에서도 맹활약하며 1934 FIFA 월드컵 3위를 이뤄냈고 브레슬라우 엘프라고 불린 전간기 디 만샤프트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또한 무려 71경기의 A매치에 출장하며 독일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출장 기록을 세웠으며 이 기록은 1970년까지 깨지지 않았다.
WM 시스템 초창기에 최고의 라이트백으로 활약했으며 단단한 수비력과 날카로운 태클은 물론이고 적절한 공격 가담에 이은 정확한 킥으로 팀의 공격을 지원하는 것에 능했다. 그 킥은 직접 골을 노리는 것에도 사용되었는데, 그는 어느 위치, 어느 각도에서든지 강력하고 정확한 슈팅을 날릴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경기를 읽고 상대의 플레이를 미리 예측하는 능력도 탁월하게 갖추었으며 아크로바틱한 슈팅까지 가능했다. 독일에서 바이시클 킥을 최초로 구사한 선수로 알려져 있다.
Rank 16
Tarcisio Burgnich
타르치지오 부르니치
국적: 이탈리아
생년월일: 1939.04.25.
활동 기간: 1958~1977
주요 소속팀: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SSC 나폴리
그란데 인테르 시대를 이끈 라이트백으로,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에서 커리어의 대부분을 보내며 4번의 세리에 A 우승과 2번의 유로피언 컵 우승, 2번의 인터콘티넨탈 컵 우승을 이뤄냈다.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서도 맹활약하며 UEFA 유로 1968 우승과 1970 FIFA 월드컵 준우승을 이뤄냈다.
강력한 신체 능력과 적극성을 바탕으로 바위라고 불릴 정도의 단단한 수비력을 보여주었으며 명장 엘레니오 에레라 감독의 카테나치오 시스템에서 우측면과 중앙을 넓게 커버해야하는 임무를 맡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특히 대인 수비에 있어서는 당대 최고로 평가받았다. 때론 일대일 승부에서 과감하게 태클을 걸었음에도 높은 안정감을 유지했다. 또한 기술적, 전술적으로 다재다능한 선수였고 적절하게 팀 공격을 지원했다.
그의 역할은 스토퍼 스타일에 가까웠지만, 커리어의 후반부인 나폴리 시절에는 스위퍼나 미드필더로 활약하기도 했다. 경험이 쌓이며 점차 공격적인 영향력이 증가한 케이스다.
이러한 활약으로 1964년 월드 사커 선정 월드 XI에 선정되었다.
Rank 15
Manuel Amoros
마누엘 아모로스
국적: 프랑스
생년월일: 1962.02.01.
활동 기간: 1979~1999
주요 소속팀: AS 모나코, 마르세유, 리옹
1980년대 유럽 최고의 풀백 중 하나로, AS 모나코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2번의 디비지옹 1 우승과 1번의 쿠프 드 프랑스 우승을 이뤄냈고, 마르세유에서 전성기를 이어가며 3번의 디비지옹 1 우승과 1번의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프랑스 국가대표팀에서도 맹활약하며 UEFA 유로 1984 우승과 1982 FIFA 월드컵 4위, 1986 FIFA 월드컵 3위를 이뤄냈다. 또한 1982 FIFA 월드컵 최우수 영 플레이어를 수상했으며 1986 FIFA 월드컵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뛰어난 테크닉을 바탕으로 한 폭발적인 오버래핑과 정확한 크로스로 이름을 날렸으며 플레이메이킹에도 관여하는 높은 수준의 재능을 보였다. 또한 좌우 사이드에서 모두 뛸 수 있었고 꾸준하게 기량을 유지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1986년 프랑스 올해의 선수를 수상하였고 옹즈 몽디알 선정 유럽 베스트 XI에 3번 선정되었으며 특히 1986년 발롱도르에서 무려 4위를 기록했다.
Rank 14
Claudio Gentile
클라우디오 젠틸레
국적: 이탈리아
생년월일: 1953.09.27.
활동 기간: 1971~1988
주요 소속팀: 유벤투스, 피오렌티나
아주리 군단과 비안코네리의 전성기를 이끈 수비수로, 유벤투스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6번의 세리에 A 우승과 2번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 1번의 유로피언 컵 준우승, 1번의 UEFA 컵 우승, 1번의 UEFA 컵 위너스 컵 우승, 1번의 인터콘티넨탈 컵 준우승을 이뤄냈다.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서도 맹활약하며 1978 FIFA 월드컵 4위, UEFA 유로 1980 4위, 1982 FIFA 월드컵 우승을 이뤄냈다. 또한 UEFA 유로 1980 토너먼트의 팀에 선정되었으며 1982 FIFA 월드컵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특히 1982 FIFA 월드컵 우승 과정에서 마라도나, 지쿠, 루메니게 등의 슈퍼스타들을 완벽하게 봉쇄하는 활약을 했다.
변형 쓰리백 포메이션을 사용하는 유기적인 "조나 미스타" 시스템에서 오른쪽 스토퍼로 활약했는데 거칠다 못해 잔인할 정도였던 대인 수비로 인해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팀의 공격 과정에서도 적절히 가담하여 정확한 크로스로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Rank 13
Wim Suurbier
빔 쉬르비르
국적: 네덜란드
생년월일: 1945.01.16.
활동 기간: 1964~1987
주요 소속팀: 아약스
토탈풋볼 시대의 아약스와 오랑예 군단을 이끈 라이트백으로, 아약스에서 커리어의 대부분을 보내며 7번의 에레디비시 우승과 4번의 KNVB 베커르 우승, 3번의 유로피언 컵 우승, 1번의 인터콘티넨탈 컵 우승을 이뤄냈다. 특히 1971-72시즌 전설적인 트레블을 달성했다.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에서도 맹활약하며 1974, 1978 FIFA 월드컵 준우승을 이뤄냈고 UEFA 유로 1976 3위를 이뤄냈다.
토탈풋볼의 근간이 되는 강한 체력과 어느 위치에서든 상황에 맞는 플레이를 보여줄 수 있는 지능과 테크닉을 훌륭하게 갖추고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정력적인 오버래핑과 플레이메이킹으로 팀 공격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또한 크로스와 스루패스의 질이 모두 훌륭했으며 다른 포지션과의 스위칭 플레이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유고슬라비아 스포르트 선정 유럽 베스트 XI에 2번 선정되었다.
Rank 12
Joshua Kimmich
요주아 키미히
국적: 독일
생년월일: 1995.02.08.
활동 기간: 2013~
주요 소속팀: 바이에른 뮌헨
독일 축구와 바이에른 뮌헨의 현 핵심으로, 바이에른 뮌헨에서 8번의 분데스리가 우승과 3번의 DFB-포칼 우승, 1번의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1번의 FIFA 클럽 월드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2019-20시즌에는 트레블을 포함하여 전관왕을 달성하는 위엄을 보여주었다. 독일 국가대표팀에서도 1번의 FIFA 컨페더레이션스 컵 우승을 이뤄냈다.
라이트백과 3선 미드필더를 겸할 수 있는 유틸리티 자원으로,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두 포지션에서 모두 탁월한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다. 약한 피지컬이 약점으로 지적되곤 하지만, 훌륭한 기본기와 높은 축구 지능을 바탕으로 어느 위치에서든 안정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으며, 엄청난 활동량으로 넓은 영역에 영향력을 발휘한다. 다방면으로 준수한 수비력을 갖추었고 풀백에서는 종적으로, 3선에서는 횡적으로 넓은 범위를 커버할 수 있다. 공격 시에는 뛰어난 오프 더 볼과 정확한 킥을 바탕으로 높은 기여도를 보여주는데 풀백으로 뛸 때는 오버래핑 후 날카로운 크로스라는 위협적인 무기로 득점 기회를 만들어내며 미드필더로 뛸 때는 전방위적으로 공격 전개를 이끌어나갈 수 있다.
이러한 활약으로 분데스리가 시즌의 팀에 5번, 키커 분데스리가 시즌의 팀에 2번, VDV 분데스리가 시즌의 팀에 6번, UEFA 챔피언스리그 시즌의 스쿼드에 2번, UEFA 올해의 팀에 1번, FIFA FIFPro 월드 XI에 1번, ESM 올해의 팀에 1번 선정되었으며 2019-20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시즌의 수비수를 수상하였다. 독일 국가대표팀에서도 UEFA 유로 2016 토너먼트의 팀에 선정되었으며 독일 국가대표팀 올해의 선수를 2번 수상하였다.
Rank 11
Giuseppe Bergomi
주제페 베르고미
국적: 이탈리아
생년월일: 1963.12.22.
활동 기간: 1979~1999
주요 소속팀: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백으로,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에서 커리어의 전부를 보낸 인테르의 원 클럽 맨이다. 인테르에서 1번의 세리에 A 우승과 1번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 3번의 UEFA 컵 우승을 이뤄냈다.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서도 맹활약하며 1982 FIFA 월드컵 우승, 1990 FIFA 월드컵 3위를 이뤄냈으며 UEFA 유로 1988에서 토너먼트의 팀에 선정되었다.
라이트백과 스토퍼에서 모두 우수한 활약을 펼쳤으며 때로는 레프트백과 스위퍼로도 출전했을 정도로 다양한 포지션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덕분에 수비 전 포지션에서 활약할 수 있었다. 또한 단단한 대인 수비와 넓은 커버 범위, 높은 수비 지능을 모두 갖추어 완성형 수비수로 이름을 날렸고 대인 방어 시대와 지역 방어 시대의 과도기에 두 시스템에 모두 적응하며 완벽한 수비를 보여주었다. 상대적으로 수비적인 타입이었지만 날카로운 크로스를 통한 공격 가담도 충분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1990년에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올해의 선수인 피라타 도로를 수상하였으며 1997년에는 세리에 A 30세 이상 최우수 선수에게 수여하는 전국 모범 경력 가에타노 시레아 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