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이커의 정점을 보여준 시즌들
축구에서 스트라이커는 축구의 꽃이라고 불릴 수 있는 포지션이다. 중앙 공격수 중에서도 최전방에 위치하며 상대 수비와 직접 경합하고 적극적으로 득점을 노리는, 가장 공격적인 임무를 맡은 이들이 스트라이커라는 칭호를 얻게 된다. 그 스트라이커의 정점을 보여준 선수들은 누가 있을까? 여러 선수들이 각자대로의 정점을 보여주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높은 정점들을 몇 가지 골라 소개해보도록 하겠다.
*축구 역사상 단일 시즌 최고의 스트라이커 TOP10~1입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선정입니다. 주관적이지만 중립은 최대한 지켰습니다.
*시즌은 소속 리그의 제도를 따라 반영하였으나, 국가대표팀 활약을 연도별로 끊어서 추가하였습니다. 경계선에 있는 대회의 경우 융통성 있게 분류하였습니다.
*스탯은 공식전 집계를 기준으로 표기하였으나, 평가에는 비공식전 포함 모든 경기를 반영했습니다.
*스탯 부분에서 득점왕을 수상한 대회는 굵은 글씨체로 표기했습니다.
Rank 10
1991-92 Marco van Basten
1991-92 마르코 판 바스턴
국적: 네덜란드
소속팀: AC 밀란
스탯: 세리에 A 31경기 25골, 코파 이탈리아 7경기 4골,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1경기 1골 (합산 39경기 30골) / UEFA 유로 1992 4경기 0골, 기타 A매치 6경기 1골 (합산 10경기 1골)
트로피: 세리에 A
Swan Song. 백조가 죽기 직전에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는 전설로부터 유래된 말로, 어떤 이의 마지막 업적을 은유적으로 일컫는 표현이다. 일찍이 "위트레흐트의 백조"라는 별명으로 불린 판 바스턴이 마지막 불꽃을 불태운 이 시즌은, 백조의 노래에 아주 잘 맞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세리에 A에서만 31경기 25골을 기록하며 생애 두번째 카포칸노니에레(세리에 A 득점왕)를 수상했고, 판 바스턴이 이끄는 AC 밀란은 무려 세리에 A 무패 우승이라는 대업을 달성했다. 또한 판 바스턴의 25골은 1965-66시즌 이후 세리에 A 단일 시즌 최다 득점 신기록이기도 했다.
시즌 종료 이후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UEFA 유로 1992에 나섰는데 비록 개인의 득점은 줄었지만 동료에게 많은 득점을 제공하며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이러한 그의 활약은 그 다음 시즌인 1992-93시즌의 전반기까지 이어진다. 이 때의 판 바스턴은 그야말로 가장 뜨거운 불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마침내 찾아온 발목 부상으로 그의 커리어는 끝나고 말았다. 일찍 물러나야만 했던 비운의 선수이지만, 그 백조의 우아한 마지막 날갯짓은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웠다.
Rank 9
1969-70 Gerd Müller
1969-70 게르트 뮐러
국적: 독일(서독)
소속팀: 바이에른 뮌헨
스탯: 분데스리가 33경기 38골, DFB-포칼 3경기 4골, 유로피언 컵 2경기 0골 (합산 38경기 42골) / 1970 FIFA 월드컵 6경기 10골, 기타 A매치 6경기 3골 (합산 12경기 13골)
트로피: X
골 폭격기의 대명사, 게르트 뮐러가 유럽의 최정상에 오른 해가 있다. 바로 1970년, 그는 당시 유럽 최고의 선수에게 시상하던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1969-70시즌 분데스리가에서 무려 33경기 38골로 득점왕을 차지했고, 1970 FIFA 월드컵에서 무려 6경기 10골을 폭격하며 조국의 3위에 기여하고 득점왕을 수상했다. 이러한 활약이 바탕이 되어 유럽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아 발롱도르를 수상한 것이고, 전세계로 범위를 넓혀보아도 브라질의 3번째 월드컵 우승을 이끈 펠레 다음 가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우승 트로피가 없는 것이 이 명단의 다른 선수들과 비교할 때 임팩트 면에서 아쉬워 보일 수 있을 것이다. 팀의 성적을 크게 신경쓰지 않더라도, 뮐러는 비교적 경기 영향력이 낮은 축에 속하기에 이 이상을 노리기는 어려울 수 있다.
Rank 8
1988-89 Marco van Basten
1988-89 마르코 판 바스턴
국적: 네덜란드
소속팀: AC 밀란
스탯: 세리에 A 33경기 19골, 코파 이탈리아 4경기 3골, 유로피언 컵 9경기 10골, 인터콘티넨탈 컵 1경기 0골, 유로피언 슈퍼컵 2경기 1골 (합산 49경기 33골) / A매치 5경기 2골
트로피: 유로피언 컵, 인터콘티넨탈 컵, 유로피언 슈퍼컵
흔히 가장 완벽한 스트라이커, 스트라이커의 교과서로 묘사되는 판 바스턴이 가장 빛났던 순간은 언제일까? UEFA 유로 1988, 그 중에서도 결승전에서의 환상적인 발리 슈팅 득점을 최고로 뽑는 경우가 많지만 아쉽게도 1987-88시즌 클럽에서의 대부분을 부상으로 결장했기에 시즌 전체로 보면 최고로 뽑기 어렵다.
그가 가장 빛났던 또 다른 순간은 1988-89시즌 유로피언 컵이다. 9경기에서 10골을 몰아쳤고, 4강 레알 마드리드 전에서 2골, 결승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 전에서 2골을 득점하며 팀을 유럽 챔피언으로 이끌었다. 득점왕은 당연히 그의 차지였다.
세리에 A에서도 비록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의 강세에는 밀렸지만 판 바스턴 개인의 활약은 출중했다. 33경기에서 19골을 득점했고, 이는 득점 공동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숫자 자체는 적어보이지만, 당대의 세리에 A는 매우 수비적인 리그였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또한 득점 기록을 떠나서, 가진 기량 자체가 급이 다른 선수였다. 기술적인 완성도는 물론이고, 팀 공격을 이끄는 영향력이 대단했다. 젊은 나이의 판 바스턴은, 이미 역사를 쓰고 있었다.
Rank 7
1993-94 Romário
1993-94 호마리우
국적: 브라질
소속팀: 바르셀로나
스탯: 라 리가 33경기 30골, 코파 델 레이 2경기 0골, 유로피언 컵 10경기 2골 (합산 45경기 32골) / 1994 FIFA 월드컵 7경기 5골, 기타 A매치 3경기 5골 (합산 10경기 10골)
트로피: 라 리가, 199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온 악마의 재능. 놀기 좋아하고 훈련에 열심히 참여하지 않는 호마리우는 경기가 시작되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화려하면서도 간결한 동작으로 상대 수비를 순식간에 바보로 만들어버리며 골 찬스를 만들어내고, 정교한 슈팅 스킬로 침착하게 마무리했다. 마치 상대의 머리 위에서, 상대를 가지고 노는 듯한 플레이를 선보였다.
그것이 정점에 달했던 것이 바로 바르셀로나에서의 1993-94시즌이다. 라 리가에서 무려 33경기 30골을 기록하였고,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한 일화는 유명하다. 브라질 국가대표팀에서도 10경기에서 10골을 득점하였는데, 특히 1994 FIFA 월드컵에서 조국을 우승으로 이끈 퍼포먼스는 화룡점정이었다.
그러나 유로피언 컵에서는 10경기 2골로 상대적으로 아쉬운 활약을 보였고, 유로피언 컵 결승전과 월드컵 결승전에서 모두 부진했던 것이 크게 아쉽다. 따라서 리그와 월드컵 활약을 동시에 보유했다는 매우 커다란 메리트에도 불구하고, 그가 더 높은 순위로 올라가는 것은 쉽지 않다.
Rank 6
1971-72 Gerd Müller
1971-72 게르트 뮐러
국적: 독일(서독)
소속팀: 바이에른 뮌헨
스탯: 분데스리가 34경기 40골, DFB-포칼 6경기 5골, 유로피언 컵 위너스 컵 8경기 5골 (합산 48경기 50골) / UEFA 유로 1972 2경기 4골, 기타 A매치 5경기 9골 (합산 7경기 13골)
트로피: 분데스리가, UEFA 유로 1972
게르트 뮐러가 온갖 기록을 갈아치우며 골 폭격기의 정수를 보여준 시즌이 바로 이 1971-72시즌, 혹은 1972년이다. 자신의 득점을 만들어내는 모든 기술적인 능력이 최고조에 달해있던 뮐러는 그 장점을 극대화해줄 수 있는 팀의 시스템이 완전히 갖추어지자 맹폭을 퍼부었다.
분데스리가에서 34경기 40골을 득점하며 당연히 득점왕을 석권했고 당시 분데스리가 신기록을 수립했다. 또한 클럽 주요 대회를 통틀어서 합산 48경기 50골이라는 무시무시한 기록을 쌓았고, 국가대표팀에서도 무려 7경기 13골을 기록했다. 특히 UEFA 유로 1972에서 '람바참바 풋볼'이라고 불린 서독 국가대표팀의 화려한 공격 축구의 대미를 장식했다.
또한 이 시즌의 뮐러는 여러 골 기록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기간을 1972년으로 집계하면 공식 경기 60경기 85골이라는 흉악한 기록을 달성했으며, 1971-72시즌 모든 경기에서 92경기 137골을 기록했다.
Rank 5
1954 Kocsis Sándor
1954 코치시 샨도르
국적: 헝가리
소속팀: 부다페슈트 혼베드
스탯: 넴제티 버이녹샤그 I 26경기 33골 (합산 26경기 33골) / 1954 FIFA 월드컵 5경기 11골, 기타 A매치 9경기 12골 (합산 14경기 23골)
트로피: 넴제티 버이녹샤그 I
앞서 소개한 게르트 뮐러 이전, 골 폭격기의 대명사가 될 수 있는 선수는 누가 있을까? 대표적으로 코치시 샨도르를 들 수 있다. 뮐러 못지 않게 많은 기록을 가지고 있는 이 선수는 자신의 득점만이 아닌 팀 전체의 득점 상승에 크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완성형 공격수였다.
주로 푸슈카시 페렌츠에 이은 마자르의 2인자 정도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지만, 적어도 1954시즌만큼은 코치시가 1인자 자격이 있었다. 넴제티 버이녹샤그 I에서 26경기 33골을 폭격하며 우승과 득점왕 타이틀을 모두 손에 넣었고, 1954 FIFA 월드컵에서 헝가리 국가대표팀의 에이스로서 준우승을 이끌었다.
1954 FIFA 월드컵에서 푸슈카시는 기존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조한 활약을 펼쳤고 코치시의 활약은 더욱 빛났다. 그리고 5경기에서 무려 11골을 때려박으며 단일 대회 최다 득점 기록을 경신했다.
통계 집단 RSSSF에 따르면, 이 해 코치시는 45번의 공식 경기에서 71골을 득점하였고, 모든 경기를 합쳐서 80경기 171골을 기록하였다고 한다.
Rank 4
2019-20 Robert Lewandowski
2019-20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국적: 폴란드
소속팀: 바이에른 뮌헨
스탯: 분데스리가 31경기 34골, DFB-포칼 5경기 6골, UEFA 챔피언스리그 10경기 15골, FIFA 클럽 월드컵 2경기 2골, UEFA 슈퍼컵 1경기 0골, DFL-슈퍼컵 1경기 0골 (합산 50경기 57골) / A매치 4경기 2골
트로피: 분데스리가, DFB-포칼, UEFA 챔피언스리그, FIFA 클럽 월드컵, UEFA 슈퍼컵, DFL-슈퍼컵
일명 '현대축구'로 여겨지는 기간에서 가장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준 스트라이커는 누구일까? 21세기 최고의 스트라이커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가 그 답이 될 수 있다. 2019-20시즌의 레반도프스키는 바이에른 뮌헨에서 무려 트레블을 달성하였고 그 3개의 대회에서 모두 득점왕을 차지하는 무시무시한 몬스터 시즌을 보냈다.
시즌 초반 흔들리던 뮌헨에서 레반도프스키만큼은 높은 경기 영향력을 보이며 고군분투했고, 팀이 다시 기세를 되찾자 레반도프스키가 이끄는 뮌헨의 공격은 불을 뿜어냈다. 레반도프스키는 분데스리가에서 31경기 34골, DFB-포칼에서 5경기 6골,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10경기 15골로 경기당 1골이 넘어가는 경이로운 득점력을 뽐냈으며, 단순히 득점자만이 아닌 팀 공격을 이끄는 선봉장이자 중추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내며 바이에른 뮌헨이 세계 최강의 팀이 되도록 크게 일조했다.
그 어떤 상대를 만나도 무자비하게 두들겨패는 바이에른 뮌헨식 공격 축구에서 핵심을 맡았던 레반도프스키, 그의 활약은 트레블과 득점왕 싹쓸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으로 보상을 받았다.
Rank 3
1938 Arsenio Erico
1938 아르세니오 에리코
국적: 파라과이
소속팀: 인디펜디엔테
스탯: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30경기 43골, 코파 이바르구렌 1경기 2골, 코파 알다오 1경기 1골, 토르네오 인테르나시오날 녹투르노 리오플라텐세 8경기 12골 (합산 40경기 58골)
트로피: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코파 이바르구렌, 코파 알다오
1930년대 후반, 남아메리카의 축구 황제라고 할 수 있는 아르세니오 에리코는 1937, 1938, 1939 이 3시즌 동안 매우 경이로운 활약을 선보였다. 당대 최고의 리그였던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에서 각각 48골, 43골, 41골을 기록하며 3시즌 연속 득점왕에 올랐다. 또한 1938시즌과 1939시즌에는 리그와 더불어 국내 컵인 코파 이바르구렌, 우루과이 챔피언과의 슈퍼컵이었던 코파 알다오까지 모두 우승을 쓸어갔다.
그리고 세간의 통념과 달리, 에리코는 자신의 득점만 많이 만들어내는 선수가 아니었다. 최전방에서 상대 수비수들의 거친 견제를 버텨내면서도 공간을 넓게 사용하며 화려한 드리블, 예측불가의 패스를 통해 자신 또는 동료의 골 찬스를 창조해냈다. 또한 아크로바틱한 슈팅 스킬로 환상적인 득점을 만들며 축구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이러한 에리코의 기량이 최절정에 달한 시즌이 바로 1938시즌이다. 메이저 대회 3개를 모두 우승하며 전관왕을 달성했음은 물론이고, 에리코가 이끈 인디펜디엔테는 리그 32경기에서 115골을 득점하며 당시 기준 단일 시즌 팀 최다 득점 신기록을 경신했다. 또한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의 클럽들이 참가한 대회인 토르네오 인테르나시오날 녹투르노 리오플라텐세에서는 비록 힘겨운 일정과 아쉬운 수비력으로 인해 높은 성적을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에리코 개인은 8경기 12골로 득점왕에 올랐다.
Rank 2
1996-97 Ronaldo
1996-97 호나우두
국적: 브라질
소속팀: 바르셀로나
스탯: 라 리가 37경기 34골, 코파 델 레이 4경기 6골, UEFA 컵 위너스 컵 7경기 5골 (합산 48경기 45골) / 1997 코파 아메리카 6경기 5골, 1997 FIFA 컨페더레이션스 컵 5경기 4골, 기타 A매치 9경기 6골 (합산 20경기 15골)
트로피: 코파 델 레이, UEFA 컵 위너스 컵, 1997 코파 아메리카, 1997 FIFA 컨페더레이션스 컵
상식을 파괴하는 '현상' 호나우두는 축구 역사의 모든 스트라이커들을 통틀어서 최정점에 있는 존재라고 칭해야 마땅하다. 힘과 세밀함이 겸비된 그의 드리블은 무시무시한 폭발력으로 상대 수비진을 초토화시켰고, 정신을 차리고 보면 공은 이미 골대 안에 빨려들어가 있었다.
라 리가에서 37경기 34골, 코파 델 레이에서 4경기 6골, UEFA 컵 위너스 컵에서 7경기 5골을 득점하며 경기당 1골에 육박하는 득점력을 자랑했으며, 브라질 국가대표팀에서도 호마리우와 짝을 이루어 1997 코파 아메리카와 1997 FIFA 컨페더레이션스 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원톱, 브라질 국가대표팀에서는 투톱으로 출전했지만 그에게 포지션과 역할이란 그저 형식적인 것에 불과했다. 그는 모든 것을 파괴했으니까.
Rank 1
1997-98 Ronaldo
1997-98 호나우두
국적: 브라질
소속팀: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스탯: 세리에 A 32경기 25골, 코파 이탈리아 4경기 3골, UEFA 컵 11경기 6골 (합산 47경기 34골) / 1998 FIFA 월드컵 7경기 4골, 기타 A매치 3경기 1골 (합산 10경기 5골)
트로피: UEFA 컵
파괴자의 정점, 1996-97시즌의 호나우두보다 위에 어떤 존재가 있다는 것이 가능할까? 놀랍게도 가능했다. 1996-97시즌에 비해 개인의 파괴력은 조금 자제했지만 팀 플레이를 더 향상시키며 더욱 높은 경기 영향력을 보여주었던 1997-98시즌의 호나우두라면 진정한 축구사 최강 스트라이커로 불릴 자격이 있다.
새로운 팀, 새로운 리그에 적응해야만 한다는 과제, 상대의 집중적인 분석과 견제라는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연계와 플레이메이킹을 장착한 크랙 호나우두는 막을 수 없는 존재였다. 인테르의 공격을 이끌며 UEFA 컵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세계 최고의 선수이자 역사상 최고의 선수가 될 재능으로 평가받았다.
브라질 국가대표팀에서도 1998 FIFA 월드컵에서 맹활약을 펼쳤으나 아쉽게도 결승전에서 개인 컨디션 이슈로 인해 팀의 패배를 막지 못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나우두 개인은 대회 최우수 선수인 골든볼을 수상하였으며 클럽과 국가대표팀에서 동시에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는 업적을 세웠다.
사실 긴 말은 필요없다. 스트라이커에 대한 이상적인 모델과, 그 상식마저도 파괴하는 크랙. 그 두 가지 영역에서 동시에 정점을 보여준 선수가 바로 이 때의 호나우두다. 스트라이커의 정점은 바로 1997-98시즌의 호나우두다.
Honorable Mention
1919 Arthur Friedenreich (1919 아르투르 프리덴라이히)
1924 Pedro Petrone (1924 페드로 페트로네)
1927-28 Dixie Dean (1927-28 딕시 딘)
1939 Arsenio Erico (1939 아르세니오 에리코)
1950-51 Gunnar Nordahl (1950-51 군나르 노르달)
1959-60 Uwe Seeler (1959-60 우베 젤러)
1962 Alberto Spencer (1962 알베르토 스펜세르)
1969-70 Luigi Riva (1969-70 루이지 리바)
2002-03 Thierry Henry (2002-03 티에리 앙리)
2020-21 Robert Lewandowski (2020-21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2021-22 Karim Benzema (2021-22 카림 벤제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