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후반, 아르헨티나 최강의 팀들이었던 인디펜디엔테와 리버 플레이트. 이들이 한 팀으로 합쳐서 브라질을 토벌하고 왔다면 어땠을까? 이게 실제로 일어났었다.
이게 가능했던 배경을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그 시대의 남아메리카 팀들은 정규 리그 외에도 친선경기를 많이 가졌으며, 유럽으로 투어를 다녀오기도 했다. 그리고 이 때는 지금처럼 각 국가의 클럽들이 참가하는 국제 대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런 친선경기들이 비공식적인 국제 교류전 역할을 했다. 정식 대회는 아니었지만, 누가 더 강한지를 판가름하는 자존심은 걸려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때의 국제 친선 경기들은 당대 선수들의 기량을 측정하는 좋은 자료가 된다.
그리고 당시에는 팀 대 팀이 아닌, 여러 팀의 연합끼리 경기하는 경우도 간간히 있었다. 특히 아르헨티나에서는, 두 팀이 뭉쳐서 하나의 팀을 이루고 이렇게 묶인 팀끼리 경기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이게 국제적으로도 여러 번 이루어졌다.
그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경기 중 하나가, 바로 1939년 열린 인디펜디엔테 - 리버 플레이트 vs 플라멩구 - 바스쿠 다 가마 경기이다.
초대형 명문 팀들의 연합과 월드클래스 선수들의 새로운 조합 그 자체로도 이목이 집중되었지만,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자존심을 건 경기이기도 했고, 또한 당대 남아메리카를 대표하는 두 슈퍼스타인 아르세니오 에리코와 레오니다스 다 시우바의 대결로도 관심을 모았다.
아르세니오 에리코는 파라과이 출신의 용병으로 명실상부 그 시대를 지배하던 선수였으며, 1937~1939시즌 3연속으로 아르헨티나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다. 강팀 약팀을 가리지 않고 많은 골을 집어넣었으며 심지어는 코파 알다오에서 우루과이 리그 우승팀까지 도륙내버리던 매우 파괴적인 선수였다.
레오니다스는 당시 남아메리카에서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에 밀려 2진에 있던 브라질이 가지고 있는 보석이자 브라질의 자존심이었다. 1938 월드컵에서 득점왕을 차지하며 브라질 축구의 상승세를 세계에 알렸다.
이런 두 슈퍼스타의 맞대결 앞에서는 아르헨티나의 신성이자 훗날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는 호세 마누엘 모레노도 한 수 접어줘야했다. 물론 모레노와 에리코가 한 팀에서 뛴다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었다. 인디펜디엔테 공격을 이끌던 아르세니오 에리코와 비센테 데 라 마타, 리버 플레이트 공격을 이끌던 호세 마누엘 모레노와 아돌포 페데르네라가 하나의 공격진을 구성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놀랍고 흥분되는 사실이 아닌가?
그렇게 경기가 시작됐다. 경기는 1939년 8월 13일과 8월 15일에 에스타디오 산 로렌소 (에스타디오 가소메트로)에서 두 번 치러졌다.
1차전은 인디펜디엔테 - 리버 플레이트의 3-1 승리로 끝났다. 마릴과 에리코, 모레노가 1골씩 득점하여 승리를 거뒀고, 플라멩구 - 바스쿠 다 가마는 레오니다스의 1골로 만회했다.
2차전도 인디펜디엔테 - 리버 플레이트가 3-1로 승리했다. 이번에는 페데르네라가 1골을 넣었고 에리코는 멀티골을 기록했다. 플라멩구 - 바스쿠 다 가마는 발데마르의 1골로 만회했다.
당연하게도 이 시리즈 최고의 선수는 2경기 3골을 기록한 아르세니오 에리코였다. 레오니다스와 모레노, 페데르네라도 1골씩 넣으며 자존심을 지켰지만 물오른 에리코를 넘보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여담이지만, 이때 인디펜디엔테 - 리버 플레이트 연합 팀이 시작부터 상대를 압도해버리자, 하프 타임에 코치들이 그 기세를 조금 죽여야 2차전에도 관중들이 경기를 보러 올 것이라면서 달랬다는 야사가 있다.
굉장히 흥미로운 경기였지만, 이 경기로 오늘날 얻을 수 있는 결론은 역시 이때는 에리코의 시대였다는 것이다. 아르헨티나 축구를 대표하여 브라질 축구를 합산 스코어 6-2로 대파하고, 스타들이 모인 그 아르헨티나 축구계에서도 가장 빛났던 아르세니오 에리코. 그의 위엄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명경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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